자전거를 샀지만 탈 수는 없었다
이렇게 빨리 크는 줄은 몰랐지
우리집 작은인간은 유난히도 탈없이 잘 성장하고 있다.
크게 아픈 적이 없고, 맞벌이 부부를 부모로 둔 덕에 어린이집 개근을 찍을 기세다. 다녀오면 'OO이가 아파서 못 왔네' 라던지, 'OO이는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 울었네' 등등 친구들 얘기도 한창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낯설어 인사도 안 하는 아기이지만, 적응력이 빠른 덕분인지 벌벌 떨며 들어간 교회 유아부도 다녀와서는 또 가고 싶다며 웃는다. 가희 빠른 적응력의 소유자다.
사랑도 듬뿍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남편네 집에서는 유일한 어린아이이고, 아내네 집에서는 첫 손주를 담당하고 있다. 양가 조부모의 열띤 사랑표현에 그 관심과 애정이 당연한 줄 알고 크고 있다.
아파트 장터 아주머니와 마트 생선코너 이모님은 볼 때마다 이름까지 불러가며 애정을 표현해 주신다. 경비아저씨는 이루 말할 것도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 사랑은 당연한 거라 여기는지, 한 번만 봐달라고 아우성인 팬들을 두고도 무뚝뚝한 편이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 결핍이 없는 아이로, 받아본 만큼 줄 줄도 아는 아이로 키우고자 하는 남편은 이 사실이 감사하다. 이제 주는 법만 가르치면 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덧 부쩍 커버린 아기이지만 여전히 아기는 아기다. 잠들지 않기 위해 아는 노래를 모조리 꺼내 부르고, 하지도 않던 알파벳을 다 틀려가며 외우는 모습은 천상 아기다. 자는 척을 하며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그 모습을 보고 싶어 실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혹여라도 쳐다보는 게 걸렸다간 재우려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돼버릴 수 있기에 차마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애간장만 태운다. 이내 숨소리가 깊어지면, 그제야 맘을 놓고 우리집 작은인간을 감상한다. 작다. 여전히 작은 아기임을 확인한다.
그런 아기에게 자전거를 사줬다. 이미 어린이집과 티비를 통해 자전거가 뭔지 알아버린 아기는 배송 온 자전거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이렇게 좋아하는 자전거를 이제서야 사줬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10개월 이상 사용 가능'
우리집 작은인간은 40개월이 넘도록 세상을 살았다. 무려 30개월을 늦게 경험하게 만들었다는 게으른 부모라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몰려왔다. 조립을 하고, 아이를 앉혔다. 30개월 남짓 늦게 앉은 만큼 작은인간은 열정적으로 페달링을 했다. 엄청 빠르게 달려가는 양 입으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공존했다.
하지만 작은 자전거에 낑겨 앉아 페달링을 하는 모습이 어색해 의구심이 들었다.
'곧 못 탈 것 같은데?'
뒤늦게 제품의 상세페이지를 살펴본 남편은 뒤통수를 때려 맞은 기분이었다.
36개월까지 이용 가능하다는 문구는 늦어도 너무 늦게 구매한 남편을 조롱하고 있었다. 죄책감이 배가되고, 미안한 마음에 우리집 작은인간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내 아기에게 작아서 못 탄다는 말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별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없었던 남편은 어휘력과 대화스킬이 좋은 아기의 장점에 기대 보기로 했다.
"아빠가 너무 늦게 자전거를 사준 것 같네? 이거 아기보다 더 아기가 타는 거였데! 우리 사촌동생에게 이거 선물 주는 게 어떨까? 아기가 엄청 멋진 오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이톤의 목소리로 신나서 말하는 척했지만, 사실 마음은 끝도 없이 불편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집 작은인간은 눈치가 빠르다.
"싫어! 나도 자전거 타고 싶어!"
남편은 너무 미안하다고, 아빠 실수라고 거듭 사과하며 잽싸게 휴대폰을 켰다. 조금 더 큰 자전거를 검색하고, 함께 고르는 척 시늉을 했다. 그리고 맘씨 좋은 아기는 결국 아빠의 노력을 받아들였다.
'바로 결제'
너무 늦었음에 대한 죄책감과 줬다가 다시 빼앗는 미안함과 조금 더 큰 자전거는 좋은 브랜드에 고급진 모델이 없었음에 대한 안심(?)과 보다 좋은걸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몰려오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