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증거
글을 쓰기 전과 쓰기 시작한 후,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겉모습은 그대로지만, 마음 안쪽에는 분명히 다른 결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고, 무심코 흘려보내던 순간들에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글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나를 바꾸어 놓았다.
처음엔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또는 나만의 감정을 어디엔가 붙잡아두고 싶어서 펜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글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것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꺼내는 일이었고, 동시에 나를 다시 돌아보고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나를 써 내려갔다.
글을 쓰기 전에는 무심코 흘려보냈던 순간의 시간들, 출근길의 나무 한 그루,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 하나까지 이제는 모두 내 시선에 머무른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상상해 보고, 거기서 파생된 질문들을 곱씹어본다. 단지 ‘보는 것’에서 ‘읽는 것’으로, ‘흘리는 것’에서 ‘붙드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바뀌어갔다.
어떤 날엔 단어 하나가 가슴을 때리고, 어떤 날엔 문장 하나가 나를 구한다. 글은 삶을 다시 살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나의 사소한 순간들이, 글 속에서는 빛을 얻는다. 그렇게 내 안의 감정들과 생각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문장으로 길을 찾는다. 지나간 날이 단지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기록된 기억'이 되어 다시 나를 돌아오게 한다.
무엇보다 글은 내 언어를 다듬어주었다. 쉽게 말하지 않게 되었고, 가볍게 단정 짓지 않게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수많은 문장을 고치고, 지우고, 다시 쓴다. 그 시간들이 생각은 물론 내 말투와 행동까지 바꿔놓았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 데에도 더 집중하게 되었고, 내가 뱉는 말 한마디에도 한 번쯤 더 생각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의 증거이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태도이다. 내가 써온 글들에는 내 하루가, 내 마음이, 그리고 내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안에는 실패도, 후회도, 작지만 소중한 기쁨도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나는 글을 통해 나를 위로하고,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마음과 생각을 조용히 글로 옮겨본다. 그 시간이 바로 나를 키워주는 시간이다.
글을 쓰는 일이 나를 바꾸었다. 더 섬세한 사람이 되었고,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은 더 조용히 사유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그저 계속 써나가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서. 그렇게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글로 남겨놓는 것이다.
한 줄 생각 : 글을 쓴다는 건 삶을 두 번 살아보는 일이다. 한 번은 지나가며, 또 한 번은 기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