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잃지 않기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선택의 기로에 선다. 원칙을 지킬 것인가, 융통성을 발휘할 것인가. 두 단어는 겉보기엔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충돌하거나, 때로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사람들은 융통성 있는 사람을 '현명하다'라고 말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에게는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쉽게 던진다. 마치 원칙은 고집이고, 융통성은 언제나 좋은 선택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 그 경계는 자주 흐려지고 만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원칙을 지킨다는 건, 단순히 융통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 원칙 안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신념이 있고,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이 담겨 있다.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다. 그 중심이 없으면,
우리는 세상의 바람에 너무 쉽게 휘청거리고 만다. 모두가 바뀌라고 할 때, 내가 여전히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반면 융통성이란, 어떤 정해진 틀을 무너뜨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어떻게 해야 더 현명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묻는 태도다. 융통성은 무원칙함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기 위한'다른 방법'일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융통성이, 자칫 ‘편한 대로 사는 방식’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정해진 규정이나 질서를 뛰어넘어 “상황이 그렇잖아”, “사람 봐가며 해야지” 하는 식으로 책임 없이 말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는 일이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한다.
진짜 융통성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되, 그 안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다. 원칙을 깨기 위한 변명이 아니라, 원칙을 더 지키기 위한 지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원칙과 고집, 융통성과 아집은 결코 같지 않다. 원칙은 누구를 위한 기준이지만, 고집은 자신의 자존심을 위한 주장이다. 융통성은 함께 가기 위한 조율이지만, 아집은 자기 틀에 갇힌 외면이다.
진짜 원칙 있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듣는다. 진짜 유연한 사람은 지켜야 할 선을 안다. 그 차이를 가늠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성숙’ 아닐까.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흔들릴 수 있지만, 쉽게 넘어지지 않고 조율할 수 있지만, 타협하지 않는 그런 중심을 가진 사람.
세상은 자꾸 ‘편리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편리함은 늘 옳은 것도, 바른 것도 아니다. 가끔은 불편함을 견디는 사람이 더 깊은 신뢰를 주기도 한다. 그저 유연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필요할 땐 유연하고, 지켜야 할 땐 단단한, 그 두 감각을 동시에 품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이 선택은 ‘지혜로운’ 융통성인가, 혹은 ‘편한’ 무책임인가. 이 주장은 ‘단단한’ 원칙인가, 아니면 ‘굴절된’ 고집인가. 이 질문 앞에 설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성장을 향한 시작이라고 믿는다.
한 줄 생각 : 원칙은 중심을 세우고, 융통성은 그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