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드는 과정
브런치라는 이름의 공간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미 이름을 알린 작가부터, 이제 막 첫 글을 올린 초보 글쓴이까지. 누구나 처음 이곳에 발을 디딜 때의 설렘을 기억할 것이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기대,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작은 떨림. 그 기분은 마치 새로운 계절의 첫 바람 같아서, 우리 모두를 잠시나마 ‘글의 세계’로 이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모든 열정은 다른 얼굴을 가진다. 처음의 설렘은 조금씩 익숙함으로 변하고, 그 익숙함은 때로 권태로 이어진다. 어느 날은 써야 할 이유가 희미해지고, 또 어떤 날은 내 글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찾아온다. 누군가의 “라이킷” 하나에 마음이 들뜨다가도, 아무 반응이 없는 날엔 괜히 허전해진다.
나는 그런 마음을 안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더 외로운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은 혼자고, 글이 세상에 나가도 완전히 닿을 수 없는 거리감이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글을 계속 써야 할까?”
“내가 쓰는 이 문장이, 정말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대답한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행동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 속에서만 맴돌던 감정들이 글이 되는 순간, 명확한 형태를 얻는다. 막연했던 불안은 문장 속에서 이름을 갖고, 흩어졌던 기억은 문단 속에서 질서를 찾는다. 그 정리의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 더 선명해지고 단단해진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복잡한 마음을 다독이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어설프게 서툴러도 좋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문장이 달라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단어 하나, 문장의 리듬 하나가 전보다 더 깊어져 있다. 그건 비교나 평가로 얻은 성장이 아니라, 시간이 빚어낸 변화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있다. 누군가는 자신을 알리고 싶어서, 누군가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단지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좋아서. 이유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쓰고 있다.
요즘은 보이는 글이 많다. 좋아요를 얻기 위한 문장, 반응을 유도하는 제목, 독자의 마음을 정확히 겨냥한 글쓰기. 극단의 고통과 아픔으로 몰아가 동정심과 눈물자극으로 유도하는 글.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결국 오래 남는 글은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살아내며 써 내려간 글’이 아닐까? 그 안에는 꾸밈없는 삶의 흔적이 있고, 그 흔적이 독자의 마음을 천천히 파고든다.
나는 브런치라는 공간이 그 점에서 고맙다. 화려한 경쟁이나 요란한 트렌드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만의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이 적고, 드러남이 느리지만, 그 꾸준함 하나로 글의 품격을 지킨다. 그들의 글은 언제나 진심으로 이어져 있고, 그 진심은 오래 읽히고, 오래 기억된다.
글을 쓴다는 건 ‘기록’이자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결국 나를 만든다.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그 속에는 한때의 내가 있고, 그때의 생각과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설프지만 진심이었던 문장, 조금은 서툴지만 간절했던 문장들. 그 모든 문장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글쓰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글을 쓴다기보다, 글이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문장을 통해 생각을 배우고, 글 속에서 나의 방향을 찾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문장을 쓰려는 마음, 그 작은 노력이 결국 삶의 태도를 바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그저 스치듯 의무감으로 라이킷을 눌러도 감사하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한 사람 만이라도 읽어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저 쓰는 동안 나는 ‘살아있다’는 확신이 든다. 글이 내 삶의 호흡이 되고, 한 줄의 문장이 하루를 버티게 한다.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브런치의 수많은 필자들 중, 어쩌면 내 글은 아주 작고, 조용한 점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점이 모여 하나의 빛이 된다면, 그 빛은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비춰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말 비 내리는 아침시작부터 펜을 든다. 멈추지 않기 위해, 잊히지 않기 위해, 그리고 여전히 글로 살아 있기 위해.
한 줄 생각 : 글쓰기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가장 조용한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