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과 가능성
“1등만 기억하는 나라.”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이 문장을 들어왔다. 스포츠 중계에서, 입시 경쟁에서, 직장 성과 평가에서조차.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오직 1등 만을 비추고, 1등 만을 축하하며, 1등 만을 기억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옳은 일일까.
얼마 전 국가정보관리원 화제가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수십만 명의 기록, 정부 부처의 수년간 데이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복구조차 쉽지 않았다. 왜일까? 예비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조 시스템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간과하던 “2등의 자리”가 비어 있었던 것이다.
최고는 언제나 보조 위에서 완성된다. 눈앞의 1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2등, 3등, 그리고 이름 없는 수많은 뒷받침이 있다. 그 존재들이 없다면, 최고라 불리는 자리는 결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생각해 보자. 1등만이 모여 있는 사회는 과연 건강할까? 그곳에는 반드시 경쟁이 따른다. 그리고 그 경쟁의 끝에는 단 하나의 자리만 남는다. 1등끼리 다 모였을 때, 그중의 진짜 1등은 결국 단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2등 이하가 된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대부분의 위치에서 ‘1등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2등은 패배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2등은 단순히 1등을 빛내는 들러리가 아니다. 2등은 1등이 설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존재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스템을 지탱하는 힘이다. 1등을 향한 도전 속에서 2등은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으며, 또 다른 가능성을 품는다. 세상은 언제나 1등보다 훨씬 많은 2등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삶을 돌아보면, 나 또한 1등이었던 순간보다 2등, 혹은 그 아래였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순간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1등의 자리에 있을 때는 오히려 두려움이 컸다.
“혹시 이 자리를 잃으면 어쩌나.”
그러나 2등의 자리에 있을 때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 조금은 자유로웠고, 조금은 여유가 있었다. 거기에서 나는 진짜 배움을 얻었다.
우리는 언제나 최고만을 바라보며 달려왔지만, 정작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2등의 힘이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이름 없이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내는 수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다. 그들이 없다면, 1등의 영광도, 최고라는 자리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이제야 안다. 삶의 가치는 순위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1등은 눈에 띄지만, 2등은 그 자리를 받쳐주는 기둥이다.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은 그 기둥으로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찮은 삶일까?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가 있기에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최고만이 의미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진짜 의미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보조와 예비, 뒷받침과 지원. 그 자리를 존중할 때 비로소 사회는 더 건강해지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2등을 패배로 보지 않는다. 2등은 또 다른 시작이며, 또 다른 가능성이다. 1등 만을 기억하는 나라에서 벗어나, 2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세상을 떠받치는 그 힘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