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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

인생의 따뜻한 기적

by 서담

햇살 좋은 한여름, 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선 숲길을 걷던 어느 날. 나무 사이로 부드럽게 드리워지는 그늘과, 잎사귀 사이로 흘러드는 바람이 나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시선을 멈춰 세운 한 장면이 있었다.


앞서 걷고 있는 두 사람. 회색 모자에 허리쯤 가방을 멘 중년의 남자와, 조금은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청년.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고 걷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보기 드문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숲길을 걷는 모습은 낯설고도 따뜻했다.


그저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나는 그 장면의 배경을 조금씩 읽게 되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몸짓, 제어되지 않는 손놀림, 그리고 아버지의 자연스럽고도 익숙한 반응. 문득, 아들이 발달장애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당황하지 않았다.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조금 더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순간 멈춰 섰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을 함께 걷는다는 것’에 대한 깊은 메시지였다.


나는 문득 내 아들과의 시간을 떠올렸다. 아주 어렸을 적, 내 손을 꼭 붙잡고 걷던 아이. 어느 순간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걷겠다고 하던 날, 나는 그걸 ‘자립’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섭섭했지만 기특해했었다. 그 이후, 나는 그 아이와 손을 잡고 걸은 적이 있었던가. 세월 속에 묻혀버린 그 짧은 손의 기억이 가슴을 찌른다.


그 아버지는 자식을 떠밀지 않았다.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걷는다. 때론 멈추고, 때론 기다리고, 다시 걷는다. 그렇게 손을 놓지 않는 일,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일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그들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한 장면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눈물과 고통, 인내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분명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감사함'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삶이란 고된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안정감을 주는 일인지.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가? 혹은 내가 잡아주어야 할 손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누군가의 걸음에 맞춰 걷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속도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가.


삶은 때로는 드라마보다 더 큰 감동을 안겨준다. 그 어떤 연출보다도, 어떤 대사보다도 그저 두 손을 맞잡고 걷는 그 뒷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장면 하나가 내 마음을 바꾸고, 내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고, 내 일상에 조금 더 따뜻함을 얹어준다.


나는 이제야 안다. 진짜 감동은 말이 아니라, 동작 하나에 담긴다. 진짜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그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날 숲길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이것이다.


한 줄 생각 : 끝까지 함께 걷는 사람, 그 손을 놓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인생의 가장 따뜻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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