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의 하루
같은 장소인데도 낮과 밤은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닌다. 낮의 숲은 매미 소리로 가득하다. 가지마다 잎사귀는 햇살을 흡수하며 반짝이고, 울창하게 드리운 나무들은 그늘을 내어 시원한 안식을 준다. 햇살이 쏟아지는 만큼, 그늘 또한 깊어진다. 그 속에서 걷는 낮은 활기차고 분주하다. 햇볕을 피해 걷는 발걸음, 저마다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표정. 모든 게 선명하고, 모든 게 분명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매미의 합창이 잦아들자 풀벌레들의 합주가 시작된다. 낮에는 힘껏 퍼 올리던 에너지가 사라지고, 대신 고요와 차분함이 숲을 덮는다. 가로등 불빛이 켜지고, 나무 사이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빛은 또 다른 세상을 연다. 나무는 더 이상 푸르름으로 자신을 뽐내지 않는다. 대신 그 윤곽만이 남아, 빛과 어둠이 서로 맞물려 만드는 그림자 속에 서 있다. 낮의 우렁찬 생명력과는 전혀 다른, 신비로운 풍경이다.
나는 이 두 얼굴의 숲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는 흔히 사람을 단편적으로 본다. 낮의 얼굴만 보고, 그 사람이 전부인 듯 단정한다. 겉으로 드러난 활기와 선명함, 누군가의 직업이나 말투, 태도 몇 가지로 그를 정의해 버린다. 그러나 그 사람이 품고 있는 밤의 얼굴은 좀처럼 보려 하지 않는다. 조용히 감추고 있는 슬픔과, 나직한 사유와, 깊은 고단함의 그림자들. 낮에는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진짜 얼굴들이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고개를 든다.
낮의 얼굴이 전부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쉽게 오해한다. 그 사람의 내면을 알지 못하면서도, 이미 판단을 내려버린다. 그러나 인간은 빛과 어둠을 모두 가진 존재다. 낮의 힘과 밤의 고요, 활기의 표정과 고단한 그림자. 그 양면을 함께 보아야 비로소 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밤의 숲길을 걸으며, 불빛이 나무 사이사이로 드리운 장면을 오래 바라본다. 그곳에는 명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 형태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나무들의 실루엣,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그림자. 그 모호함이 주는 울림은 낮의 선명함보다 더 깊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처럼. 분명히 존재하지만, 온전히 다 알 수 없는 어떤 진실이 거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도 숲을 대하듯 해야 한다. 낮과 밤, 두 얼굴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빛나는 모습뿐 아니라, 그림자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까지도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오해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으며,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삶은 언제나 빛과 어둠의 교차 속에 있다. 낮에는 뜨겁게 살아내고, 밤에는 조용히 숨을 고른다. 그 두 과정을 모두 지나야 만 하루가 완성된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낮의 선명함과 밤의 모호함, 드러남과 감춤을 모두 가진 채 살아간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겠다. 낮의 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숲의 절반만 보고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밤의 숲이 있기에 낮의 숲이 더 빛나듯, 사람도 고단함과 그림자가 있기에 웃음과 빛남이 더 소중하다.
가을로 접어드는 이 저녁, 풀벌레 소리가 내 발걸음을 따라온다. 전등 불빛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어주고, 그 사이로 드러나는 하늘빛이 영롱하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사람을 떠올린다. 단편으로 단정하지 않고, 전체를 바라보는 태도. 빛과 그림자를 함께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숲길에서 배운 가장 큰 지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