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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철 Sep 28. 2020

그렇게 우린 서울에 산다.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을 읽고.. (오성부 작가)

오성부 작가님께 책을 선물 받았다.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틈틈이 한 번 더 읽었다. 

그렇게 2번을 연달아 읽으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성부 작가(형)를 만난 건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만남은 어색했다. 당시 교회 소모임 중이었는데 밤을 새우고 왔는지 눈은 충혈돼 있었고 어색한 중절모에 굉장히 강한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눈매는 날카로웠고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 주면 안보이겠네...."

이것이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빠짐없이 매번 똑같이 충혈된 눈과 날카로운 눈매, 중후해 보이는 중절모를 쓰고 매주 모임을 꾸준히 참석했다. 분명 내 예상대로면 다음 주면 보이지 않을 사람이 계속해서 눈에 보인다. 


"이 형은 뭐지?" 


그리고 내 인식이 바뀌는 시기가 오는데 바로 축구를 매우 좋아하던 형이 어느 날 기타를 배운다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축구를 포기하고 1년간 열심히 기타를 배우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못해 수준급 실력자다.) 꾸준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나는 형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바람 치던날 형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전화가 걸려온다. 


"명철아 나 하루만 재워줄 수 있어?"

"네 형 제 방에서 같이 자요!"


서울 토박이인 나는 형에게 묻지도 않고 내방을 내어주었다. 당시 형의 목소리에 나는 묻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형을 향해 괜찮다고 오히려 편하게 지내시라고 얘기하던 게 생각난다. 늦은 저녁 간식을 사 와 허기라도 달래시라 했지만 형은 미안했는지 입에 대지 않았다. 

형의 날카로운 눈매는 사라졌고 어딘가 모를 슬픔이 눈동자에 느껴졌다.

그날 형과 짧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했고, 이게 우정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외에도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형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와 더 놀랐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형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깨달음에 머리가 멍해지기도 했다. 이 좋은 메시지를 혼자 읽기엔 너무 아까웠다. 누구보다 나와 형의 청년시절보다 더 힘들 지금의 우리네 청년들을 위해 몇 자 더 적어본다.


요즘 N포 세대라는 말이 청년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다. 그래도 나의 20대 시절엔 3포, 4포 세대였는데.. 이젠 끝없는 포기를 의미하는 N이 등장해버렸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세상이 만들어놓은 가치와 기준으로 나를 빗대어 보며 나도 모르게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나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인데.. 어느 순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친구, 친구들의 직업, 스펙, 영어점수, 회사, 대기업, 연봉, 결혼, 자동차, 집.. 등등 세상과 미디어가 만든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며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인생에 패배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일도 아닌데 마치 세상이 그어놓은 선을 넘지 못하면 자책하고 스스로를 더 채찍질했던 것 같다. 오히려 그 기준을 스스로 그어놓고 나도 모르게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짜 맞춘 듯 정해진 기준만 따라가는 삶에 이 책은 위로가 됐다.


익숙하고 편안한 곳을 떠나 이곳 서울에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냥 운이 나빴어', '재수가 없었어'라고 하며 지나칠 일들도 얻어갈 수 있는 깨달음과 교훈이 있었다. 

아르바이트 시절부터 회사생활 그리고 사업실패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시 시점으로는 포기하는 게 나아 보이는 상황에도 끝까지 생존하는 존버(?) 정신을 배우게 된다.

단돈 몇만 원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몇 시간씩 걸으며 전단지를 붙이고 몇만 원 더 준다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 모습에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았는가 반성하게 된다. 


잘될 것 같았던 일이 틀어졌을 때.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을 때도 원망과 분노로 가득한 상황일지라도 다음 스텝을 꿋꿋이 밟아 나가는 멘털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지금도 엄청난 내공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죽을 것같이 힘든 상황에도, 나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언제나 소중한 만남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작은 돈일지라고 돈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과 작은 만남도 귀중하게 여기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금 N포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누군가 잘났다고 하면 돈이 많거나 또는 돈이 많아 보이거나 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아니면 소위 인기 많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를 떠올리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그리고 지금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노력에는 관심이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판단하고 내면의 성품과 자세는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소위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되는 미래가 될 것 같다. 학벌과 출신, 재력으로만 사람이 판단되지 않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 삶에서 나오는 깊은 깨달음과 밖으로 나오는 말과 행동으로 평가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스펙이 아니라 내공을 쌓았으면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위 엘리트 층의 스펙과 사회적 지위를 낮게 평가하는 건 아니다 그런 점들만 높게 평가하는 오류를 주의하길 바란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는지.. 그리고 살아냈는지에 대한 스토리가 더 높게 평가될 시간이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은 어찌 보면 평범한 우리 주변의 친구 같은 한 청년의 고군분투가 들어있다. 누군가는 한 번쯤 고민해보고 위로받지 못해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순간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준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어"가 아닌
"힘든 거 알아 하지만 다시 한걸음 내디뎌 보자'라는 메시지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지금 힘들다면, 지쳐있다면,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나'를 만들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소망하던 그곳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그 마음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가장 나답게 나다운 모습으로 시간을 차곡히 배우 다 보면 어느새 인생이란 커다란 화폭에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될 거라고. 
이상한 서울 나라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아!
남의 눈치도 보지 말고, 기죽지도 말고!
소신껏! 쭉쭉 가보자 멋지게!
우리 사는 거 다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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