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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30. 2022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는 이유 (1)

바퀴벌레, 청소 그리고 미스터 박

 

으악!!!!!!!!!!!!!!!


비명이 단전에서부터 나오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놈을 발견한 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책상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형광등 스위치 옆에 걸린 사각 거울과 벽 사이에서 두 줄의 기다란 실이 꿈틀꿈틀 흔들리고 있었다. 뭐지? 하고 눈을 가져간 순간 알게 되었다. 그 실의 정체가 바퀴벌레의 더듬이란 사실을.      


순간 얼음이 된 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알만 사방으로 굴리며 놈을 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 고작 바퀴벌레 한 마리 때문에 얼음이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한 사람 잠깐 내 말 좀 들어봐요. 그 더듬이가, 보통 길이가 아니었다니까요!      


바퀴벌레는 그냥 내리쳐 죽이면 안 된다고 하던데... 어떡하지? 하던 순간 녀석이 거울 뒤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크기의 바퀴벌레. 놈의 등장으로 순간 뒷목에 소름이 쭉 스쳤다. 나의 중지 손가락 길이만 한 녀석이 거울 뒤편에서 나타나 날개를 펴 날아오르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날았어!!! 날았다고!!!!!!



나의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오신 아버지는 고작 바퀴벌레 한 마리 때문에 난리냐며 혀를 끌끌 차셨다. 계속해서 날아오르며 도망가는 녀석 때문에 난 기절 직전까지 비명을 질러댔다. 아버지는 추격 끝에 문 앞에 잔뜩 쌓아둔 빨랫감 속으로 들어간 놈을 잡아내시고는 그걸 들고 내 쪽으로 워이~ 워이~ 하고 장난을 치셨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마지막 비명을 지른 후에야 한밤중의 소동이 끝이 났다.      


아버지는 나가시기 전에 방을 한번 쓱 보시고는 한마디 하셨다.


딸아. 방 좀 치워라.
여기가 이놈 방이지, 니 방이냐?
내가 방주인을 죽였네.


분명 같은 방인데, 조금 전과는 전혀 달라져버린 방의 느낌. 진정되지 않는 심장소리를 안고 나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놈의 동선을 쓸고 닦으며 대청소를 시작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겨우 방청소가 끝이 났다. 아... 분명 쓰레기를 많이 버렸는데... 왜 내 방은 청소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가를 고민하며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정리 정돈은 재능이다. 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지각 능력을 요하는... 음,음...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자.

      

겨우 3평 정도 되는 나의 공간은 옷장과 수납장을 다른 방에 두고서도 정리가 쉽게 되지 않았다. 예전 회사 생활 당시, 나의 사수는 내 책상을 보면서 웃곤 했다. 넌 왜 책상을 1/3만 쓰는 거냐고. 솔직히 그 당시 나에게 던져진 자료가 너무 많기도 했지만 정리가 심하게 안 되는 것도 인정하는 바였다.


정리도 정리지만 나의 혼돈의 방에서 엄마가 갖는 가장 큰 의문점은 '왜?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는 가!'였다. 분명 쓰레기를 던진 방향은 쓰레기 통이었으나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고, 난 그들을 방치했다. 다시 주워 담으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는 나를 엄마는 이해 못 하셨다. 그들을 한 번에 모아서 담으려 했... 음... 이번에도 그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내 방을 둘러보실 때마다 말씀하셨다.      


언제 한번 미스터 박을 불러야겠어!



미스터 박.

말로만 들었지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던 그를 만난 건, 일을 시작하고 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이전 세입자가 나가고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 청소를 원하는 집주인들이 있다. 입주 청소는 보통 세입자의 몫이라고 하지만 세가 나가지 않는 경우 집주인이 나서기도 한다. 요즘은 워낙 서비스들이 발달되어 업체들에게 맡기곤 하는데...  곧 세입자가 나간다며 우리 부동산에 방을 내놓은 집주인은 전세금을 좀 올려 받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지방에 있어 신경 쓸 수가 없으니 괜찮은 청소 업체를 소개해달라고 하셨다. 신혼부부가 살았던 집이라 무척이나 간단한 청소일 거란 걸 강조하면서.


엄마는 이번에도 미스터 박을 연결해 주었다. 조금 비싸긴 해도 거기만큼 일하는 곳이 없다며 말이지.


미스터 박은 우리 부동산과는 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가 운영하는 업체는 특수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다른 업체보다 가격은 조금 높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곳만큼 일 잘하는 데도 없다는 것. 몇 군데 업체들이 일을 엉망으로 처리하는 것을 겪으면서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엄마였기에 미스터 박의 꼼꼼하고 똑 부러지는 일 처리방식은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사장님!
그 청소업체 뭐예요!
가격을 너무 비싸게 부르잖아요!


얼마 후, 견적서를 받아 들고 잔뜩 성이 난 집주인의 연락에 엄마가 당황하셨다. 간단한 청소에 그가 큰 비용을 불렀을 리가 없는데... 얼른 미스터 박과 통화하신 엄마는 그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이전 세입자가 집을 엉망으로 해놓고 이사를 갔던 것. 엄마를 통해 뒤늦게 사진을 확인한 집주인은 그제야 화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사 간 부부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길길이 날뛰셨다.


‘이사’라는 것은 새 보금자리로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동안 자신이 살던 곳과의 이별이기도 하다. 어떤 일이든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 진짜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상을 담았던 곳을 처음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이사’의 시작이다.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


토요일 오후,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남자가 부동산에 찾아왔다. 훤칠한 키에 정장을 입은 남자. 무슨 일이시냐고 묻는 내게 그는 웃으며 자신이 미스터 박임을 알렸다. 전화로 목소리를 듣기만 했지 실제로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나의 예상보다 심히 어려 보였다. 목소리만 듣고 40대 정도로 생각했건만, 30대, 아니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 부동산으로 돌아온 엄마는 미스터 박을 보고 마치 아들이 본가에 찾아온 것 마냥 반기셨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인물이 훤 해 보인다고 좋아하셨다. 근처 웨딩홀에서 지인의 결혼이 있었다는 그는 생각나서 잠시 들렀다며 박카스 한 상자를 내밀었다.


비용으로 보시면 안 되고,
일 처리로 판단하셔야죠!


어려 보인다고 은근히 무시하며 비용으로 투덜거리는 사람들의 입을 단숨에 막아버린 그가 깐깐한 엄마의 눈엔 꽤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젊은 사람이 대단하다며 그의 칭찬을 아끼지 않던 엄마였다. 그를 보는 눈빛에 대견함이 묻어나는 걸 보며 난, 누가 보면 미스터 박이 아들이고 내가 손님인지 알겠다며 투덜거렸다.


"미스터 박, 언제 한번 얘네 방 좀 손봐줘. 싹 다 버려야 해."      

"엄마, 그냥 나를 버려."


빵 터진 그의 웃음에 우리도 함께 웃었다. 한창 근황 토크를 이어가던 중 그가 생각난 듯 엄마에게 물었다.



사장님,
OO빌라 302호 아가씨 기억하세요?


"그럼 기억하지! 왜?"

"저 얼마 전에 그 아가씨 다시 만났어요."      


그 이야기에 엄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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