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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30. 2022

어쩌면 마지막 방이 될지도 몰라서 (2)

나의 문을 두드려줄 누군가, 내가 두드릴 누군가의 문


고작 문 하나가 닫혔을 뿐인데.

한 뼘도 되지 않는, 그리 두껍지도 않은 문 하나가 닫혔을 뿐인데,

세상과 한 인간의 끈이 단절되었다.

 

아주머니 댁 지하실에 사시던 어르신이 발견된 건, 돌아가신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여름의 끝자락에 묘하게 짙어지는 의문의 냄새로 동네 주민들이 웅성이기 시작했고, 이는 집주인에게 닿았다. 경찰과 함께 어르신의 공간에 들어선 집주인 아주머니는 참혹한 현장과 마주했고, 그날의 충격에서 몇 달을 헤어 나오지 못하셨다.


돌아가신 어르신과는 동네를 오가며 한 달에 몇 번씩은 마주치곤 했었다. 살짝 굽은 어깨에 조금 불편하신 다리로 거동하시던 어르신의 손엔 항상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 내용물은 봉지의 모양만으로도 유추가 가능했다. 평소 소주를 즐겨 드시는 것 같다는 것 외에는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고독사. 나에겐 처음 마주하는 일이었다. 책에서도 다큐에서도 기사에서도 이미 여러 번 접해본 이야기였지만, 이웃의 이야기가 되자 이야기의 결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가 있지? 교류하는 사람이 동네에 정말 한 사람도 없으셨던 건가? 자식은? 누구 하나 전화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일단, 상속인을 찾아야 하니
주민 센터에 연락부터 해보는 게 좋을 거야


엄마는 울먹이는 아주머니와 긴 통화를 하셨다. 시신 수습이 끝나고 아주머니가 해야 하는 일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시는 걸 옆에서 들으며 난 심장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의 마주해야 할 일들은 그야말로 현실이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과는 별개의 현실.


보증금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방안의 물건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청소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등등...    


이 모든 일은 상속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어 진행되기 때문에 일단 상속인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셨다. 통화를 끝내신 엄마에게 물었다. 어르신은 오랜 시간 혼자 셨던 것 같은데 무슨 상속인이 있겠냐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도,
상속받을 사람들은 있는 법이더라


그날 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쉽사리 침대에 눕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너무 당연하게 내일을 낙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 어제 다 보지 못한 영화의 재생 버튼은 다시 눌렀다. 엔딩 크레딧이 한참 올라가고 있을 때, 이번에도 마지막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며칠 뒤, 상속자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르신에겐 아들이 한 명 있었다고... 아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고, 자신 앞에 놓인 숫자들을 저울질한 끝에 상속도 포기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례절차로 마지막 길을 떠나셨다.


일련의 과정을 다 겪은 주인집 아주머니는 당분간 지하실의 세를 놓지 않기로 결정하셨다. 아직은 그 집에 누군가를 들일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혼자서 살 집을 구하시던 70대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집을 겨우 하나 찾아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공간을 둘러보시고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하셨다. 결국 그분의 방은 찾지 못했다. 다른 부동산으로 가셨으리라. 그곳에서라도 좋은 방을 만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소리가 울렸다. 액정을 바라보며 받을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야!
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휴대폰 너머로 분노와 안도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저 하하하, 멋쩍은 웃음으로 대화의 빈자리를 채웠다. 아직 통화를 할 마음에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마음의 준비... 그런 게 과연 필요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너무 반가워서 말이지.


글 쓰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 뒤, 나는 휴대폰을 거의 꺼두다시피 하며 대부분의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날 꾸준히 응원하던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기도 했고, 지금의 마음 상태를 줄줄이 읊는 것도 그 자체로 끔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연락두절에 걱정은 분노로 분노는 다시 걱정으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었지만 난 당시 하루를 버티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버거웠기에 그들의 연락을 피했었다. 그런데 막상 목소리를 듣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나 버거웠을까. 그냥, 이렇게 통화했으면 되었을 것을.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우리의 통화는 딱, 세 마디 만에 끝이 났다.                     


아파? 아니.

바빠? 조금.

만나. 그러자.


그날 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영화를 재생시켰지만 또 결말에 닿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아마도 그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더 이상 결말이 중요하지 않아 졌기에...






오랜만에 예전 꿈을 꿨다.

선배의 방문을 두드리고 두드리던 그때, 신나게 문을 두드리던 나는 꿈속에서 꽤나 즐거워 보였다.


언젠가 나도 나의 마지막 공간과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 나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려줄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두드릴 수 있는 문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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