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Oct 30. 2022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는 이유 (2)

화살이 향하는 방향


OO빌라 302호.


그녀는 엄마가 보여준 집들 중에서 그곳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숫자보다 조금 높은 숫자의 집이었지만 그녀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그 집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7년 차 커리어 우먼. 그녀의 똑 부러지고 꼼꼼한 모습을 본 집주인은 그녀를 꽤나 마음에 들어 했고, 그렇게 그 집은 그녀의 공간이 되었다.      


문제는 1년이 지난 후에 시작되었다.      


202호가 집에 바퀴벌레가 늘어난 것을 집주인에게 불평하면서부터. 갑작스럽게 나온 바퀴벌레에 대한 불만은 그저 바퀴벌레 약을 놓는 정도로 넘어가려 했지만, 401호, 503호도 이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불평엔 은근하게 나는 악취에 대한 이야기가 얹어졌다. 처음엔 그저 예민한 세입자들의 꼬투리 정도로 생각했던 집주인은 서울로 올라와 건물에 들어서며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건물의 모든 문을 열어보고 나서야 집주인은 문제의 주범을 찾을 수 있었다.


302호.

문 너머의 공간은 1년 전, 자신이 세를 놓은 곳이 아니었다. 발을 디딜 곳 없이 쌓여있는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주방엔 치우지 않은 음식들이 온갖 곰팡이와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뿐이랴... 집안 곳곳엔 구더기와 바퀴벌레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보고 집주인은 거의 쓰러질 뻔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나온 여자는 1년 전, 계약서를 쓰며 보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고...


1년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집주인은 엄마에게 SOS를 쳤고, 미스터 박이 급하게 그 집으로 가 청소를 진행했다. 미스터 박이 청소를 하는 동안 쓰레기가 가득한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던 그녀. 나가 있으셔도 된다는 이야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청소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소파에만 앉아 있었다고 한다.

    

집주인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내보내고 싶어 했지만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다. 거의 울먹이며 지방으로 내려갔던 집주인은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다시 한번 미스터 박을 불러야 했다.


미스터 박이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얼마 전 급하게 청소 의뢰를 받고 찾아간 오피스텔이었다고 한다.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 땐,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고. 그가 그녀를 알아본 건, 청소가 한창이었을 때 발견한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쓰레기 속에 파묻혀있던 TV 서랍장 위에 놓인 액자... 액자 문양이 독특했던 탓에 그저 낯익은 액자라고만 여겼는데, 액자 속 밝게 웃는 여자의 사진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 청소하는 방이 2년 전 만난 302호 여자의 방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그때보다 더 초췌해진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고생했네, 미스터 박.”

“고생은요... 좀...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가 돌아가고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인간은 누구나 생의 과정에서 한 번쯤은 큰 소용돌이를 겪기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면, 특이하게도 많은 수의 사람들은 화살을 가해자가 아닌 자신에게 돌린다.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곤경을 피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한다. 정작 내 인생에서 버려야 하는 쓰레기 같은 놈들을 버리지 못하고, 진짜 쓰레기 속에 나 자신을 가두는 것.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면서 파괴시키는 것이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하고, 스스로를 지키던 마지노선이 무너지게 되면 삶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왜 그런 데서 상처받아?
고작 그런 일에?


어떤 상처는 작은 상처가 쌓여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 어떤 상처는 단, 한 번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기도 한다. 허나 모두 큰 상처임엔 변함이 없다. ‘왜, 고작’ 이런 단어로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각자의 경험이 있고, 그 안에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체 어떤 일이 그녀를 그렇게 무너뜨렸을까? 그리고 지금, 그녀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을까? 다시 옮겨간 집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수없이 많은 질문에 무엇 하나 답을 얻을 수 없는 밤이었고,

처음 부동산을 찾았던 그녀를 기억하는 엄마에겐 더 마음이 힘든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어딘가에 있을 그녀가 마음의 평안을 찾길 바랄 뿐이다.



이전 08화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는 이유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