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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30. 2022

너를 위한 공간

오여사의 고집의 이유


아줌마!
저희 집 이사 갔어요?


벌컥 열린 문과 함께 당황한 남자의 목소리가 훅 밀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웬 군복을 입은 남자가 문 앞에 씩씩 거리며 서있는데, 어? 꽤나 낯이 익었다. 군복 입은... 군바리... 내가 아는 사람이...     


"어? 누나!" 

"아! 혁이구나! 휴가 나온 거?"

     

머리 스타일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못 알아보게 만드는가 싶다가도 눈을 보니 확실히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온 혁이는 집으로 향했다가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이 오여사(혁이 엄마)가 아님에 적잖이 당황을 했다는데... 때마침 전화도 연결되지 않아 급히 우리 집을 찾은 것이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더니 집이 이사를 갔어요.’ 예전 라디오에선 이런 사연들이 유머로 심심치 않게 나오곤 했는데, 눈앞에서 그 사연을 직접 마주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엄마에게 이사 간 집 주소를 받아 든 녀석은 동공이 커졌다.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거기 맞아 


주소를 받기 전, 조금 들떠있던 녀석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혁이네는 이 동네에서 꽤 오래 살아왔다. 녀석이 7살이 되던 해에 오여사는 젖먹이 동생을 안고 이 동네로 이사를 왔고, 이후 몇 번에 걸쳐 보금자리를 옮겼다. 혁이네 이사는 거의 우리 부동산에서 전담으로 진행되곤 했다. 월세 집을 전전하다 처음으로 방 2개짜리 전셋집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 오여사는 드디어 혁이 방을 따로 줄 수 있게 되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날, 오여사의 손을 잡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엄마의 모습도 나의 기억엔 선명하다.


혁이는 대학에 입학한 후, 기숙사 생활을 하다 입영통지서를 받았는데... 녀석이 군대에 가기 전 오여사와 작은 마찰이 있었다. 오여사는 방 3개짜리 집으로의 이사를 원했던 것. 1년 전부터 미리 찜해둔 곳도 있었다. 하지만 혁이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입시를 앞둔 동생이 조금 더 큰 방을 쓰길 바랐다. 자신은 군대에 가있으니 무리해서 방 3개짜리 집으로 가지 말고 각 방이 조금씩이라도 더 큰, 방 2개짜리 집으로의 이사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혁이의 고집도 상당했지만, 오여사의 고집은 한 수 위였다.

녀석이 국방의 의무를 행하던 사이, 오여사는 자신이 가고 싶어 했던 집으로의 이사를 몰래 강행했다. 따지고 보면 몰래도 아니지 뭐. 애초에 혁이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안방 하나에 작은 방 2개. 사실, 내가 보기에도 방 사이즈가 전체적으로 조금 작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오여사는 그 집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그날 저녁, 혁이는 다시 부동산을 찾아왔다. 


누나, 나 밥 사 주라.


이봐 군바리. 황금 같은 휴가를 나에게 쓰겠다고? 거 참, 비효율적인 녀석일세. 






고기를 좋아하는 녀석과 함께 불판 앞에 앉았다. 소주를 시키기에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박을 뻔했다. 난 아직도 녀석이 성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으니 원... 종이접기를 같이 하자고 귀찮게 하던 7살 꼬맹이였는데 말이지... 녀석은 고기가 익기도 전에 연거푸 소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안 봐도 뻔한 상황. 오여사와 한바탕 한 모양이었다.


"그 집 말고는 없었어?"

"집이야 많았지."

"그런데 왜?"

"아줌마가 그 집을 원하셨어. 그게 중요한 거잖아." 

     

입대 전, 몇 번이나 강조했다고 했다. 군대로 인한 공백이 있고, 이후에 독립을 할 계획이니 자신의 방은 필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녀석은 다 같이 하향평준화가 된 지금의 공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녀석의 빈 잔을 또르륵 채워주며 나는 말했다.      


아줌마는 언제든 니가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하셨던 거야



내가 뱉은 말에 내가 멈칫하고 말았다. 

아마, 나의 부모님도 그랬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오거나, 출장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나의 방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청소가 된 방을 보는 것은 사실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내 비록 방을 더럽게 쓰더라도, 혼돈 속에 체계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덧붙여 짜증을 내곤 했다.


아... 나는 지옥에 가겠지?      

뭐,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나의 방은 참 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다. 무척이나 떠나고 싶다가도, 떠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온갖 소음이 들려오는 곳이라 진저리가 나다가도, 그 소음에 마음의 안정을 얻기도 하는... 나의 성장과 실패가 짙게 묻어있어 가슴 아프다가도 뭉클함이 느껴지는... 그런 곳.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꿈꿔온 독립이 무산되며 난 내가 내 방에 발이 묶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곳은 부모님이 나에게 주신 나만을 위한 공간. 언제든 돌아와 나의 생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부모님은 내가 돌아올 때마다 충전할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이를 깨달은 순간 알게 되었다. 

나의 진짜 독립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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