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내가 나를 구하고 싶었고
내가 나의 히어로가 되고 싶었어
어린 시절, 내 책장 속 공주들의 이야기가 별로 구미에 당기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들은 왕자에 의해 ‘구원’을 받는 존재라는 것. 왕자들 멋있는 거 누군들 모르냔 말이지... 하지만 난 왕자들의 손에 구해지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일어서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글을 쓰는 것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무렵, 내가 느낀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마주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나는 깨달았다. 멋지게 날아오르는 것만이 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마다 무너지려 하는 자신을 다잡아 일으키는 것도,
당장이 아닌 다음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것도,
나의 일상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것도,
꿈꾸는 '나'를 보호하는 것도,
모두 히어로의 일이었다.
나를 구하겠다고 큰소리치던 녀석이 나를 가장 파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커피를 앞에 두고 엄마와 마주 앉았다. 어젯밤, 꽤 오래 고민하고 내린 결정을 전했다.
"퇴사하겠습니다, 사장님"
엄마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표정이셨다. 어쩌면, 나의 퇴사 결정을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넌, 참 괜찮은 직원이었어"
"그래? 이참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볼까?"
"니가 공부를 하겠다고?"
"아무래도 그건 좀 아니지?"
빵 터진 엄마와 한참을 같이 웃었다. 엄마는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않으셨다. 아니,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사표는 수리되었다.
방을 보여주는 건
그 사람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야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방을 보여주는 것은 그 사람이 앞으로 꿈꿀 수 있는 곳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스치듯 들었던 그 말은 꽤 오랜 시간 머릿속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그저, 낭만적인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말을, 엄마와 함께 일을 하고 나서 한참 후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나의 방을 구하려 한다.
내가 꿈꿀 수 있는 곳을 찾아보려 한다.
그렇게 나를 구하기로,
다시, 나의 히어로가 되기로 결정했다.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그들의 꿈이 나만큼이나 행복한 꿈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