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씨, 면담 좀 합시다"
부서장이 갑자기 면담을 하자고 하길래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회의실로 들어갔다.
"마리 씨와 우리 회사는 업무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네요. 그래서 같이 일 하는 것을 그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근무 기간 1년을 한 달 앞두고 나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부서는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년밖에 안 될 정도로 업무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곳이었다. 주 52시간 시행 전 평균 퇴근 시간은 밤 10시였고 회의가 있는 날에는 비난과 질책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자주 바뀌는 직원들 사이에서 열정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에 경황이 없던 나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말일까지라도 다니게 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부서장은 거절했다. 그는 모든 회사 업무에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고 직원 중 아무도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조용히 회의실을 나왔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평소보다 서둘러 일찍 출근했다. 마음은 조급했고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떨리는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000 부서의 000입니다. 0월 0일 0시경 부서장님께서 면담하자고 갑자기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회사의 업무수행 방식과 맞지 않는다며 회사에서 저와 일을 하는 걸 그만두기로 결정하셨고 이미 퇴직을 결정하신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근속 1년이 되는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말일까지라도 업무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퇴직 의사가 없습니다. 인사팀의 회신을 부탁드립니다"
나의 상황에 대해 가족들은 나보다 더 어이없어했다. 우리는 주말에 부당해고에 관한 기사와 사례를 함께 알아보며 조사를 했다. 나의 상황은 명백한 부당해고였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입장을 정리한 글을 인사님에 발송했다.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문장과 단어 선택에 신중함을 기하며 수정을 하고 또 했다. 어차피 오래 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퇴직금도 줄 수 없다는 회사가 괘씸했다
메일을 발송하고 얼마 후 인사팀이 나에게 회의를 요청했다. 회의실에는 부서장, 그리고 내가 쓴 이메일이 프린트되어 놓여있었다. 부서장은 당황한 눈치였다. 나가라고 하면 고분고분 제 발로 나갈 줄 알았던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동안 비슷한 방법으로 나가게 한 직원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 공격적으로 말을 내뱉었지만 나는 내가 쓴 메일의 내용을 다시 떠올리며 차분하게 퇴직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또박또박 다시 전달했다. 인사팀장은 옆에서 내가 작성한 이메일을 살피며 나와 부사장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내가 나의 상황을 글로 정리해서 인사팀에 메일은 보낸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메일에는 내가 받은 부당한 상황이 설명되어 있었고 나 역시 그 메일을 쓰기 위해 고심하며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내 생각과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인사팀은 내가 전달 한 메일을 토대로 부서장과 오고 간 대화의 내용에 대해 사실 여부를 가렸으며 경험 많은 인사팀장은 내가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회사는 결국 퇴직금 외 말일까지의 월급과 그 외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퇴사를 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글"이 가지는 힘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을의 입장에서, 약자의 위치에서 내가 인사팀에 보낸 몇 줄의 메일은 허공에 소리를 질러대며 혼자서만 억울해할 뻔했던 그 상황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회사에서 절대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할 때 구차하고 치사해서 그냥 가버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내가 쓴 메일을 프린트해서 가지고 다니면서, 그들에게 보낸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맸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결국 글 속의 문장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