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로맨스 영화가 좋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시험이 끝나면 핸드폰을 끄고
밤새 집에서 조용히 로맨스 영화를 보곤 했으니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라든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 혹은 어바웃타임 같은. 운명 같은 사랑이 있을 거라 믿게 하는 영화들을.
그런 영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런 운명 같은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참 아름다운 마음일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언젠가, 그러니까 이십 대 중반쯤
그런 사랑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특별한 이유는 없이 살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스무 살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이 있다.
우리는 2014년, 대학교에서 동기로 처음 만났다.
어쩌다 우리는 함께 점심에 떡볶이를 먹으러 갔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
고작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은 족발을 함께 먹기로 했고 (그때까지 나는 없었다.)
족발을 먹고 난 이후로 나도 함께 술을 마시게 됐다.
대학교 내내 지독하게 붙어 다닌 우리는
술자리에서 종종 우리끼리는
'절대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물론 우리는 모두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었고. (돌이켜보면 누군가는 그저 웃었던 것 같지만)
전역을 막 했을 때쯤,
우리는 어김없이 전역을 축하하는
기념이었던가 하는 이유로
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그때 혁이가 뜬금없이 혹시 우리가 모이는 날
조금 일찍 올 순 없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항상 단톡이 활성화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톡을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먼저 만나서 커피를 마시자는 친구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알겠다고 했다.
그날, 혁이는 효연이와 만나고 있다고 고백했다.
순간의 감정은 놀라움과,
2년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괘씸함,
먼저 안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생겼던 것 같다.
지난 2년 동안 술자리를 함께하고, 여행을 다니며
같은 추억을 쌓았는데도 단 한 번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그 사실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함께한 시간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된 듯,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였고, 관계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 안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때가 스물세 살이었을 것이다.
나는 서른 하나가 되었고,
친구들은 오늘, 시위와 더위가 들끓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부부가 되었다.
혁이와 효연이의 결혼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모습이 참 영화 같다는 생각.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로맨스 영화처럼,
저들도 저들만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현실에는 영화 같은 사랑은 없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
그리고 오늘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영화 같은 사랑, 영화 같은 이야기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었구나.
정말 저런 사랑도 할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혁이와 효연이가 걸어온 길의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다. 다만 아마도, 평범한 날들 속에 묻혀 있던 작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이야기를 만들었겠지.
스크린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이야기가
알고 보니 내 앞에서도 천천히 완성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너희의 오늘이 한 영화의 해피엔딩이라면,
나는 그 엔딩 뒤에 이어질 장면들을
언제나 그랬듯이 옆에서 지켜볼 거야.
장면에는 웃음도, 갈등과 어려움도 있겠지만
삶은 여전히 이어질 테니,
부디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되기를,
앞으로 마주할 날들 속에서도
서로를 다정히 바라보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