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찾기
내 안의 어떤 것들은 절대 서로를 마주하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가는 큰일이 날 것처럼 군다. 서로의 합이 맞춰지지 않으니, 나의 열 구석 중 아홉은 부자연스럽고 삐걱거려 어색하다. 이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도 닿아있다. 내 안의 무엇도 모두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글로 나타내어 활성화한다.
2022년 5월의 어느 날도 그랬다. 나는 그날따라 비장하게 글을 썼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보통의 일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날이었다. 뿌듯한 시간이 되길 바랐던 또 다른 하루, 그러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밀려드는 우울감에 젖어 끄적였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기억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불면증이 있었다. 물건을 항상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학생 때부터는 느리다는 말을 들었고 시간이 모르는 새 훅하고 지나가버려 약속을 전혀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공간을 관리하거나 물건을 정돈하는 것은 어렵다. 늦게까지 잠을 못 자는 날이 계속되다가, 초저녁에 기절하듯이 잠에 드는 날이 연속되기도 했다.
- 2022년 5월 23일 새벽의 메모
모두 해낼 자신도 없으면서 역할만 늘려댔다. 어느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일에 환장하며 쫓아다녔다. 그러니 실패는 예약해 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며 자초한 일의 결과는 부정적인 평가들이었고, 그것들은 한데 모여 엉겨 오히려 나를 괴롭혔다. 실패에 갇힌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은 채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사실 보통의 일상이 내게 버겁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도 모두 나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자 이 병의 증상이기도 했다. 바로 성인 ADHD(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 장애)라는 신경발달장애였다.
2023년 3월, 나는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발을 들여놓았다. 병원 내부는 참 깔끔하고 밝았다. 하얗고, 천국 같은 느낌에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여지 하나 주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어색하면서도 편안한 곳. 비현실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같은 3월의 끝자락, 나는 이제껏 시끄러운 줄도 몰랐었던 머릿속이 그제야 조용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겐 없던 고요함, 그 고요한 반짝임을 찾고서 1년여 동안에 많은 것이 나아지고 좋아졌다. 머릿속 안개가 걷히고 모든 계절이 선명하게 빛났다. 맑게 갠 하늘의 청량함도 비가 오는 날의 무거운 분위기도 모두 전보다 진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계절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연재 브런치북에는 내 안에 갇혀있던 반짝임을 찾아갔던, 1년여 동안 써낸 글을 토대로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담았다. 이 글을 읽어줄 독자인 당신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생각으로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더 이상 할 말이 남지 않을 만큼 모두 쏟아내어 글을 쓰려고 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나서 그 끝에 욕이든 격려든 얼마든지 덧붙여도 괜찮다. 그런 건 오로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나를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읽고 쓰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음속 반짝이는 순간들을 회상하고 재구성했다.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여기 어딘가에서 어쩌면 당신의 고요한 반짝임의 순간들도 발견할지 모른다. (202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