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의료시스템, 한국
요즘들어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최악이라는 것에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하는 것 같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바꾸자는 거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것을 정부가 이해하고 있는지는 좀 의문이지만 말이다.
의사들 입장에서는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싶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 관심도 없고 파업한다고 해서 변할 것 같다는 기대도 안 한다. 혹시 지금 늦어져도 언젠간 시행될 거다.
(부연설명하자면, 나는 전공의들의 사직을 파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많은 수가 정말로 그만둔 것이라고도 믿는다. 내가 말한 파업은 경기도의사 반차파업 같은 걸 말하는 거다.... 아무도 그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지만)
결국 이 기형적인 구조는 언젠가 한 번은 싹 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사의 전체 수가 현재 모자라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의료는 썩었고 의사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성토하지만 정작 내게 오는 환자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약처방받고 수액만 맞으러 온다거나 다른 약이 안 들어서 왔다거나 아니면 여행가는데 상비약이 필요하다(이걸 급여로 타는 건 불법이다) 같은 얘길 하기 때문에 피부로도 와닿지가 않는다.
하지만 비교대상인 의료복지 선진국처럼 바꾸려면 턱없이 모자라다(이건 사실 그들도 모자라서 난리다). 이민의사들을 열심히 모집하고 있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사실 우리나라에 턱없이 모자란 건 놀랍게도 필수의료 의사만이 아니라 일반의, 가정의학과 의사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의료복지국가를 선언하면서도 어떤 전문의를 만날지, 어떤 병의원에 갈지, 어떤 비급여 치료를 선택할지를 모두 환자의 자유의사에 맡기고 있다. 여기서 기형적인 구조가 발생한다. 원래는 선택권이 없어야 맞다. 전국민이 부러워하는 무상의료, 진정한 복지국가에 가까이 가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으로부터 지나친 자유를 빼앗아야 한다. 복지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캐나다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모자라 해외 여러 의사들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gatekeeper가 모자라다는 것이다.
의료개혁을 끝까지 잘 이루어내어 현재의 엉망진창이고 전국민이 성토하는 현재의 후진국식, 반은 자유시장경제를 따르는 이 희안한 의료시스템을 바꾸려면, GP, FM을 만나기 전에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각과의 전문의를 만나는 것을 불법으로 하면 된다. 그리고 국가재정안전을 위해 굳이 전문의약품이 필요하지 않은 감기, 장염, 비염 등의 질환은 OTC로 약국에서 해결하게 하고, 워크인 진료소나 가정의학과에서 판단하여 입원이 필요한 폐렴(대부분의 지역사회 폐렴, 특히 학동기 폐렴은 입원이 필요하지 않으며 자연히 낫는 종류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전부 입원한다)같은 경우만 제외하고 걸러내어 정말 각과 전문의가 필요한 환자만 응급도를 고려한 대기 리스트에 올리면 된다. 2차 병원, 3차 병원, S대병원을 가겠다며 진료의뢰서를 환자가 요구하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된다. 진료의뢰는 의학적으로 해당 의료기관에서 처리가 안될 때 행정절차를 거쳐 보내는 건데, 그것은 의학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심리적으로 불편한 것은 맞지만, 사실 의학적으로 잘못된 점은 하나도 없다(애초에 타국 의료시스템이 불편하다는 얘기도 한국 이민자들에게서 나올 뿐 보건시스템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가를 높여서 병의원 문턱을 높이는 것은 의사들 배불리기에나 일조하지 국가재정에는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수가를 높이면 그 돈은 누가 내나? 건보재정 열악한 건 다들 아는 사실인데 의사집단만 수가를 높이자고 요구한다. 우리나라 수가가 기형적으로 낮은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사들은 돈을 꽤 벌었다. 왜냐면 불필요한 환자들이 너무 많고, 환자를 촘촘하게 걸러줄 거름망 역할을 하는 의사도 너무 적기 때문이다.
결국 의료개혁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줄 돈이 없는데 방법이 있겠는가. 전공의 민간인 사찰로 떠들썩하던데 난 군대를 동원한대도 그냥 ‘그만큼 절박하시다는 거겠지’ 했을 것 같다. 재정상황 보면 놀랍지도 않다. 파산 직전인데 의사 눈치 보게 생겼나. 한 2만 명만 탄압해도 오천만명이 편해진다. 그리고 탄압한다고 당장 굶어죽을 집단도 아니다. 다분히 공리주의적으로 옳은 선택이다. 현재 총액계약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결국 수가의 삭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현재는 행위별수가제로, 위내시경을 하면 위내시경료가 봉합을 하면 봉합료가 나오는 식이다. 총액계약제는 미리 총액을 결정해 놓고 그 안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식). 이대로는 미래가 없고 내 우둔한 머리로는 해결책이 안 나온다.
하지만 나는 당연한 처사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이 나라를 떠나기 위해 준비한다. 엄청난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팩트는 안 받아 줘서 못 간다). 무상의료 시스템에 기여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응급환자, 중환자는 일사천리로 해결해 주지만 굳이 전문의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는 전문의를 못 보게 하고, 대신에 빈부에 상관없이 모두가 무상의료를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은 의대생시절부터 내 이상향이었다. 그 일부를 느끼고 싶다.
결국 이건 일기니까.....
그래서 나는 멀고도 먼 여정의 첫 걸음을 떼고
이민준비를 시작했다.
회화가 가능한 건 영어뿐이니 다시 아이엘츠 준비부터.
그리고 끝없는 서류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