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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Aug 19. 2022

조직생활의 숨구멍 – 사내교육

대기업 vs 스타트업

어느새 스타트업 생활 6개월째


사실 말이 스타트업이지, 직원 1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이다.

직원 10,00명 이상이 일하는 대기업과는 다르다.

복지나 업무 방식의 차이는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개인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숨구멍의 부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에서는 트렌드 교육이다, 직능 교육이다, 직급 교육이다 하고 

월별, 계절별, 연도별로 뭔가 계속 준비하고 제안해 주는 것이 있었다. 

교육의 퀄리티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교육입네 하고 누군가 나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노력이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보기도 하고, 미래를 구상해 보기도 하는,

바람 좀 쐴 수 있는 바람구멍, 

그래서 결국은 숨구멍 같은 기능을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일만 있다. 


그리고, 대기업에서는 아무래도 만나는 조직들이 다양하다 보니,

그들과 점심 약속만 잡아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늘 보던 우리 조직 사람들 말고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바람을 쐴 기회들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붙어 앉아 계속 씨름하고,
밥도 같이 먹는다

다른 부서 사람들과 아주 가끔 미팅은 하지만, 

회의가 아닌 협의 수준이라, 30분을 넘는 경우도 없고, 

딱히 밥을 먹어가면서 교류할 만한 공통점도 많지가 않다.

교육 등의 기회를 통해서 회사 외부의 사람을 만날 기회도 거의 없다.


초반 새로운 조직에 대한 긴장감과 신선감이 사라지고 나니, 

그 실상이 이제야 똑바로 보인다.


처음에는 일부러 근처에 근무하는 옛날 동료, 후배들과 식사 약속을 만들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바람을 쐬곤 했다. 


하지만, 어느새 한여름과 장마철, 태풍의 시기를 맞고 보니, 

누군가를 바깥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것도 좀 부담스러워졌다.


아주 가끔,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 

점심시간을 빌어 근처 책방에 가거나, 혼자 점심을 먹거나 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봤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으로는 그 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교육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회사에 말해 볼까 싶었지만,

지금 내 나이에, 임원으로 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돈과 여력이 있으면, 젊은 직원들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백 번 맞는 말이다.


그래서, 그냥 내가
사내 교육을 해 보기로 했다.





기획서 교육을 해 볼까?


전 직장에 있을 때, 신입사원 기획서 작성 교육을 했었다.

오전 중에 교육을 하고, 오후에는 직접 작성, 발표하게 한 후 피드백을 주는 하루짜리 교육이었다.

그 시간을 위해서 나름 고민도 많이 하고, 발표 자료도 준비했던 터라, 

그 주제로는 좀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기획서 작성’이라는 게 

내가 소속된 마케팅실 이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스타트업에서는 바로 옆 부서라 할지라도 나와는 상당히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라, 

기획이나 마케팅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에이, 모르겠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래도 기획, 기획서, 마케팅 이런 일에는 관심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 실 직원들에게 내 경험을 공유한다는 의미는 있을 테니.


전체 사업부서에 공고문을 올렸다.

종합광고대행사 출신 마케팅 실장이 기획서 교육을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석해 달라.

3주간 3회에 걸쳐 진행하겠다.

특히 우리 실 담당자들은 가급적 꼭 참석을 해 달라.


그리고 교안 준비를 했다. 

첫 회는 팩트북 작성법, 둘째 회는 타겟팅 방법, 셋째 회는 포지셔닝 방법.

이론적 배경 10분에 사례들 20분으로 시간을 짰다.

30분 넘어가면 지겨울 테니.


그날이 왔다.

두근두근.

과연 몇 명이나 모였을까.

회사에서 가장 큰 회의실을 빌렸는데 말이다.


결과는… 큰 반전 없이 10명 정도였다.

우리 실 사람들 5명에 외부 사람들 5명.


실망할 수준도 아니고, 그렇다고 놀랄 만한 관심도 아닌.

딱 적절한 수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기획서 수업


파워포인트를 띄우고, 클래스를 시작했다.

제목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획서 수업” 이었다.

뭐 사실, 과장도 아니다. 여기가 아니면 세상 어디서도 하지 않을 교육이니.


준비한 내용을 끝 내고 질문을 받았다.

초심자들이 할 만한, 진심이 느껴지는 좋은 질문들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보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남은 두 번의 시간도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첫 수업에 왔던 직원들이 대체로 끝까지 자리를 채워 주었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 주가 지난 후,

우연히 화장실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던 여직원 한 명을 만났다.

같이 세면대에서 볼일을 보던 중 거울 속에서 눈이 마주친 그녀는

“실장님, 교육 재밌었어요”라고 새삼 인사를 했다.

그리고

“또 해 주심 안돼요?” 하고 귀엽게 웃었다.


교육 듣는 동안에
그래도 약간 회사 나오는 재미가 있었는데요


같이 웃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나도 십분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뭐 정말 내용이 대단히 좋아서가 아니라, 

늘 보는 팀 사람들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이외에

좀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부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도 나누는 그 시간이 좋았던 거다.


“글쎄요. 뭐 할 만한 게 또 있으면” 

하고 나도 미련 한 움큼을 남겼다. 


뭐, 그게 나한테도 숨구멍이었으니까.


나이는 많지만 나도 교육받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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