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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Jan 10. 2021

돈과 예술의 밀땅

광고회사 조직 개편의 속내

연말, 조직 개편의 시즌이다. 

관전 포인트는 영업 조직과 전문직능 조직 간의 힘겨루기다. 


광고회사에서 전문직능이라 함은

기획, 제작, 미디어 같이 자기 이름 걸고 남다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나름의 전문성을 가진 업무를 칭한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 제작 영역.

우리가 최종 만나는 각종 콘텐츠를 실제로 제작 총괄하는 곳으로,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당연히 결과물의 때깔은 천차만별이다.

개개인의 차이도 많거니와, 한 개인에 있어서도 ‘물이 올랐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뭔가 

일이 잘 풀릴 때가 있고, 좀 감이 떨어져서 결과물에 갸우뚱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일부 잘 나가는 제작 담당자는 사내에서 거의 연예인급으로 인기를 끈다. 

광고주와 기획이 준 방향을 제쳐 둔 채, 자신의 감을 믿고 자신의 관점대로 아이디어를 풀어오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를 흔히 우리 업계 용어로 ‘예술한다’라고 한다

사실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냥 시킨 대로, 주어진 대로 숙제하듯이 푸는 것보다는 본인의 판단 하에 소신을 가지고 내는 

아이디어가 더 좋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것도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이, 고집 센 광고주가 이미 답을 정해 놓은 

상황이라면 공연히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이 결국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의 판단력이다. 그런데, 영업 담당자는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고 일단 쩐주인 

광고주님께서 하달하신 방향에 가능한 한 맞춰 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영업 조직과 직능 

조직 간에는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광고회사의 경쟁력은 결국 직능 조직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일방적으로 영업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다.


딜레마다. 

당장 영업 조직의 영업 활동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영업이 우위에 있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근본 경쟁력인 직능 조직의 사기를 키워주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 


조직은 생물이다. 

몇 년에 한 번씩 주기를 두고 양 쪽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조직 운영을 하곤 한다. 


지나고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계속 한쪽만 우위를 둔 체제가 굳어진다면 회사는 빠르게 경직화되고,

그 속에 속한 개인이 미래를 꿈꿀 여지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런 영업과 예술의 딜레마는 비단 조직의 문제뿐만은 아니다.


대행사에 근무하는 개개인도 마찬가지다. 


직업적 양심을 걸고,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A라는 방향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주가 B라는 방향을 고집할 때, 어느 선까지 개개야 하는가? 

광고주에 맞서 투사처럼, 소신을 주장하는 선배가 멋져 보일 때도 있었다. 

사실 그럴 때 드라마틱하게 설득해 낸다면 내부적으로는 영웅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직급이 올라갈수록, 사실 이런 견해가 강해지는 게 어찌 보면 정상이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대행사에 영웅은 점점 줄어든다


광고주의 전문성도 높아지고, 우리가 외부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한 광고주 내외부 

사정들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요새는 의견이 서로 맞서면 그야말로 한번 정도? 조그만 목소리로 

소심하게 소신 피력을 해 보고 바로 접는 것이 추세다. 


마케팅의 거대 담론으로 헤아릴 수 없는 디테일한 고객 접점들이 너무 많고, 그러한 민감도는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광고주들이 더 높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행사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는 균형 잡힌 광고주들도 꽤 있긴 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런 조직, 그런 브랜드를 위해서라면 우리도 더 열심히 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고민을 하게 된다. 


적당한 갈등과 긴장 관계는 결국 조직이든 개인이든 건강한 성장을 돕는다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내 의견, 소신을 일단 먼저 장착하고, 

실제 협의 시 그 수위 조절은 상대와 상황 봐 가면서 하는 것이 정답 아닐까.

돈과 예술 사이의 밀땅, 그리고 적당한 밀땅은 관계의 발전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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