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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귤 May 27. 2022

찌개 찬양과 음식의 정성

얼마 전 다른 소셜 미디어에서 친구 사이인 분과 정성이 담긴 음식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배달 음식도 외식도 지겨워지는데 아마 음식에 정성이 없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요지였는데 그 때 이야기가 줄곧 기억에 남았다.


실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직장인 시절 내겐 출장이 퍽 잦았다. 자주 가기도 했고 한 번 가면 오래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충 일 년에 절반 정도는 집에서, 절반 정도는 이런 저런 출장지에서 보냈다. 그게 꽤 고생스러운 일이라는 걸 상사들도 잘 알고 있어서, 적어도 숙소나 식비에 대해서는 퍽 관대한 편이었다. 거창한 코스 요리를 매일 먹을 아니었지만 그 나라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식당에서 제대로 먹을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아침식사도 회사와 계약되어 있는 좋은 체인 호텔의 식당에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일 주일이 되고 일 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소는 옮겨도 이 호텔이 저 호텔같고 호텔 방안에서 내 방 냄새도 아니고 호텔 냄새도 아닌 희한하게 뒤섞인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화려한 부페가 차려진 조식 식당에 내려가서도 커피 한 잔에 달걀 프라이나 하나 먹고 올라오게 된다. 리뷰를 검색해서 좋다는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는 대신 마트에 가서 간단하게 챙겨 먹을 만한 샐러드나 과일을 사 오게 된다.


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 지점에서 그냥 간단하게 '집 밥보다는 아무래도 그런 음식이 정성이 적게 들어가지'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훈련받은 쉐프의 고급스러운 스킬이 들어간 음식에 정성이 부족하다 할 수 있을까? 오믈렛을 정확히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반숙으로 익혀 내놓는다거나 카레에 들어가는 당근을 일일이 돌려깎는 것도 정성의 일부 아닌가? 그런데 그런 정성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뭔가가 있긴 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소위 집 밥이라고도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또 아니다.


트위터 친구는 그 정성을 '먹이려는 마음' 이라고 표현했다. 때와 장소와 먹는 사람의 컨디션 등에 따라서 한 끼니라도 잘 먹게 하려는 마음이 들어가 있느냐는 의미인 것 같다.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면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요리를 하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고급 식당에 가서 최고의 쉐프가 만든 요리를 먹는다 치더라도 식당의 메뉴는 여러 사람을 공통적으로 만족시키는 것이 목적이니 결국 내가 원하는 딱 그것과 일치되기는 어렵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겠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반복되다 보면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아무래도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 빈 구석이 자꾸 늘어나고 점차 허전해지는 모양이다. 나는 사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피곤해도 오히려 내가 직접 만든 요리만 먹게 되는데 그것도 결국 이런 맥락 아닐까? 내가 원하는 요리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은, 재료와 구현 능력이 갖춰져 있다는 전제 안에서는 대체로 나 자신이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렇게 여기저기 빈 구석이 많을 때는 오히려 단순하고 간소한 음식을 원하게 된다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된장찌개에 밥 비벼서 달걀 프라이 곁들여 먹거나 물 만 밥에 장조림 혹은 오이지 곁들여서 먹는 정도가 딱 좋다. 굳이 거창하게 끓인 찌개일 필요도 없다. 먹다 남아 냉장고에서 하루쯤 묵은 찌개일 때 오히려 더 훌륭할 때도 많다. 다시 데우고 어쩌고 하다 보면 너무 물러서 으깨진 두부나 애호박까지 떠서 쓱쓱 비비고 달걀 프라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반숙으로 만들어서 노른자를 터뜨려 먹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김치를 곁들일 수 있다면 나는 배추김치보다는 열무김치나 석박지를 택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김에 싸서 먹는 것도 괜찮다.


아니, 이거 쓰다 보니 깨닫게 된다. 겉으로만 단순해 보이지 매식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시시콜콜한 조건이 수없이 딸려있어야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거구나...그러니까 '나' 아니면 나를 너무 잘 아는 누군가 말고는 채워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 정성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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