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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Feb 10. 2020

당신의 육체는 안녕하십니까

인간의 3요소 : 밥, 잠, 똥

소설의 3요소로 함은 주제, 구성, 문체를 말하고 소설 구성의 3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이다, 라고 학교에서도 배우고 소설 창작 수업 첫 시간에도 되새긴다. 소설을 소설이게 하는 세 가지 요소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인간 3요소는 무엇일까? 아기침대에서 꼬물거리는 신생아를 보고 있자니 자동적으로 세 단어가 튀어나온다. 밥, 잠, 똥. 

잘 싸고 잘 먹고 잘 살기


특히 아이의 '똥디션'에 내가 이렇게 예민해질 줄은 낳기 전엔 몰랐다. 물론 인간에게 배변활동은 중요하다. 몇 년 전 신장염으로 고생할 때, 임신 초기 심한 변비로 힘들었을 때 원활한 배변활동의 소중함을 몸소 겪었다. 사람의 입은 하나인데 왜 신장은 두 개며 소장과 대장은 구겨 넣을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지 이해했다. 잘 싸는 게 잘 사는 것이다.


조리원 퇴소 하루 전 원장님께 신생아 케어 교육을 받았다. 수유 텀 잡기, 수면교육, 그리고 대변 상태에 따른 아이의 건강상태 확인하기 등을 배웠다. 황금변, 녹변, 혈변, 검은 변, 색깔에 따른 이상 증상들, 너무 묽거나 지나치게 딱딱한 변들이 말하는 것들, 변비가 심해 가스 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영아산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른 것보다 영아산통이 가장 무서웠다. 영아산통을 예방한다는 베이비 마사지를 열심히 연습하고 아기용 유산균을 알아봤다.


아이는 하루 두 번 이상의 활발한 배변활동으로 우리에게 황금빛 대변을 선물했다. 저 조그만 몸에 이렇게까지 싸버리면 살이 빠지는 게 아니냐며 걱정될 정도였다. 배 안에 가스가 찰 틈도 없이 뿡뿡 뿌직뿌직 열심히 생산하느라 바쁜 조고만 몸. 젖을 빨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느라 저도 모르게 똥을 쌀 때도 있다. 영아산통 대신 영아가 싼 똥의 냄새는 상상 이상. 모유와 분유만 먹는 아기의 똥은 시큼하게 발효된 요거트 냄새가 난다. 남편은 똥기저귀를 갈 때마다 오늘의 단호박 샐러드도 최상품이라고 선언했다.


생명을 유지하는 능력


금빛 건강을 자랑하는 아이의 대변을 하루하루 체크하다 기묘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의 배변활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매 장면마다 인물들이 화장실에 가는 걸 쓸 필요는 없지만 소설의 중요한 지점이 될 수도 있다. 오랜 수험생활에 지쳐 달리기를 시작한 주인공, 그는 변비에 시달리지는 않았는지? 수험생활의 고통을 변기에 앉아 나올 생각 없는 큰 것을 쥐어짜내는 장면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시내버스를 타고 기점에서 종점까지 한나절을 달리는 주인공이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라면? 


나에게 소설 속 인물이란 평행우주의 주민들이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숨 쉬고 먹고 자고 살아있을 사람들. 그들을 내 소설에 소환할 때 나는 알아야 한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입이 짧은 편인가? 오랜 불면증으로 부정적인 사고에 익숙해진 인물인가? 배변활동은 안녕하신가? 먹고 자고 싸고 숨 쉬는 생명의 필수적인 기본 능력에 대해 생각한다.


이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능력


한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장기적으로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고시원에서 혼자 살 때 흰 밥에 계란 프라이만 얹어 끼니를 때우거나 일주일에 서너 번 라면을 끓여 먹는 데 익숙했다. 불량한 식습관은 필연적으로 소화에 문제를 일으켜 3일 넘게 소식이 없거나 과하게 쏟아지는 결과물을 배출시켰다. 그때 나는 세상 모든 우울을 아랫배에 쌓아 두고 사는 괴물이었다.


지금은 질 좋은 모유 생산을 위해 하루 세 끼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골고루 갖춘 식사를 챙겨 먹고 화장실에서 불필요한 힘을 들이지 않는다. 나의 건강이 아이의 건강으로 이어지기에 신경을 쓴다.


모두 안녕하신가요


아이의 시큼한 단호박 샐러드는 생산자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한다. 다른 우주가 아닌 바로 이 우주에 착륙한 존재가 원활히 적응 중이라는 황금빛 신호. 우리는 아이의 안녕함에 감사하며 기저귀를 갈아 준다. 생명을 유지하는 일에 아직 미숙한 아이에게 우리가 없으면 안 되기에, 부모인 우리 역시 최대한 잘 자고 챙겨 먹고 정기적으로 화장실을 방문하며 서로의 안녕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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