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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Dec 30. 2019

나는 아이를 낳았다

사람 만드는 일의 고단함 : 출산


출산예정일, 이슬을 보다


소설에 쓰는 문장 대부분은 나의 상상이다. 직접 경험한 일을 더 생생하게 쓸 수 있는 건 당연하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 처음 했던 생각은 소설에 임신과 출산 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2019년 12월 27일, 임신 40주가 되는 날, 즉 출산예정일, 전날 밤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잠이 들까 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화들짝 놀라 깼다. 새벽 4시쯤 소변을 보는데 피가 살짝 묻어 나왔다. 첫 이슬이었다. 출산이 머지않았다는 몸의 신호를 수신한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걱정하는 남편을 출근시킨 뒤 비장한 마음으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출혈은 점점 양이 더해지고 진통 주기가 한 시간 안쪽으로 좁혀 들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밖에 나가 파스타를 먹고 공차 타로 밀크티를 마셨다. 오늘 방학을 맞이한 초등학생들로 가득한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막연히 ‘늦어지지 않을까?’하며 미뤄둔 과제 마감일이 당장 오늘이라는 공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밥도 잘 넘어가고 내 발로 잘 걸어가는데 곧 아이를 낳게 된다고? 최근 일주일 간 잠도 거의 못 잔 나의 정신은 꿈에 잠식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이미 내 몸은 자궁 문이 2-3cm 열린 상태였을 것이다. 임신일기를 쓰면서 느꼈던 교훈을 출산 경험에서 다시 되새긴다. 백 명의 산모가 있다면 백 개의 출산 경험이 있다는 사실. 초산이면 예정일보다 늦게 나온다, 분만은 천천히 진행된다, 내 발로 걸을 수 있을 정도면 아직 자궁문이 덜 열린 것이다, 모두 내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아이는 예정일에 정확히 맞춰 나왔다. 진진통 시작부터 병원 가기까지 한 시간, 병원에서 분만까지 두 시간 걸렸고 병원 가기 직전까지 나는 예능 프로를 보며 배는 아픈데 웃기다고(...) 웃고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출산 가방을 점검하고 족발을 배달시켜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었다. 20분 주기의 진통이 10분대로 꺾이고 급박하게 5분 간격으로 훅 줄어들었다. 배 안쪽에서 무딘 칼로 저미는 듯한 통증은 점점 날이 예리해졌다. 밤 11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진통 주기를 알리는 내 목소리가 평온하게 들렸는지 간호사 선생님은 좀 더 참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하셨고 그 사이에 진통 어플이 2분 대 진입을 알리며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라 명했다. 이제 통증이 오면 온 몸이 30초에서 1분 간 일시정지 상태로 굳었다. 간신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택시를 탔다.      


이미 문은 열렸습니다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택시 안에서 하루의 경계선을 넘었다. 28일 자정 12시 6분, 2층 분만실에서 간호사 선생님께 첫 내진을 받았다. 뇌 속까지 휘저어지는 고통에 절로 신음소리가 나오고 간호사 선생님은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입원을 선언, 바깥에서 대기 중이던 남편에게 ‘자궁 문이 5cm 열렸고 분만까지 얼마 안 걸린다.’는 소식을 알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문이 5cm 열린 산모 치고 침착했던지라 그 정도까지 출산 준비가 진행된 상태였음을 병원도 산모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병원 오기 한 시간 전까지 책 택배를 뜯으며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무통주사도 못 맞고 병원 오자마자 애 낳았을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밤 12시부터 아이가 태어난 새벽 2시 12분까지, 인터넷에서 읽었던 일련의 출산과정들을 빠르게 거쳤다. 내진과 자궁문 확인, 수액 맞기, 웅크린 몸에 무통 바늘 꽂기, 관장, 제모, 바늘을 꽂을 때 바로 주사까지 맞는 줄 알았던 나는 통증이 전혀 줄어들지 않아 퍼뜩 겁이 났다. 관장과 진통의 고통이 동시에 찾아왔을 때 눈앞이 노랬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에게 무통주사가 효과가 없다며 하소연을 하다 점점 강도가 더해지는 진통에 동아줄 잡듯 필사적으로 남편 손을 붙들었다. 아이가 많이 내려오지 않아 두 번째 내진으로 양수를 터뜨렸을 때는 눈앞에 색이 사라졌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린 상태로 무통주사약이 투입되고 등 뒤로 차가운 기운이 퍼졌다. 무통 효과가 서서히 듣기 시작하는 10분이 내 인생 최대 고비였다.      


고통의 크기가 눈에 보일 수 있다면, 출산이 임박한 시점의 진통이란 지구 하나만큼의 크기다. 행성 전체가 내 몸 하나만을 짓누르고 있었다. 무통주사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고통은 조금씩 작아지면서 바위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이제 이 바위를 밀어내야 모든 것이 끝난다. 새벽 1시 반, 분만실이 분주해지고 보호자는 다시 병실 밖으로 나가고 내 하체가 활짝 열렸다. 침대 옆 손잡이를 부여잡고 라마즈 호흡과 함께 막판 힘주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 진통이 찾아오면 숨 크게 참고 아래로 밀어내기, 하반신 감각이 희미했지만 머릿속으로 중량 스쾃 200lb 들어 올릴 때 느낌을 최대한 떠올리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위를 힘껏 밀어냈다.


한 번 더, 다시 한번 더, 얼굴이 터질 것 같았고 밑으로 무언가 나올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느낌, 5번인가 6번째 힘주기에 분만실이 어두워지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바위가 절벽 끝에 다다랐다는 직감에 마지막 온몸을 던졌다.      


미끈미끈하고 구불구불한 무엇인가가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축하드립니다, 새벽 2시 12분, 아들입니다.”


내 가슴 위로 까맣고 붉은 존재가 흐느끼며 떨고 있었다.

2시간 전까지 내 몸 안에 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남편이 들어와 탯줄을 자르고 아이는 폐호흡을 시작하며 그 고통에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후련함과 무사하다는 안도감에 정신이 맑아졌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출산 전 꿈꾸는 것 같던 몽롱한 상태에서 나를 일깨워 지극히 현실적인 삶의 감각으로 돌려놓았다.      


깨끗이 목욕한 아이가 엄마 냄새를 기억하기 위해 내 품에 잠시 안겼다.

코를 씰룩이던 아이의 감은 두 눈이 떠지고 아이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도서관 하나는 채우고도 남을 문장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단 하나의 문장만이 명료했다.


나는 지금 아이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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