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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Sep 20. 2020

부모의 발견

너의 시선 끝에 우리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본다'는 단어에 예민해진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는 나를 응시한다, K가 S의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등등. 드라마나 영화라면 배우의 순간적인 시선 처리로 가볍게 잡힐 포인트를, 글은 동사를 써서 하나하나 짚어 줘야 독자가 따라갈 수 있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고 무엇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 중인지 그 흐름을 '눈에 보이게' 써야 한다.


나는 책을 본다....보이는 거 맞지?


시선은 중요하다. 나 혹은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따라 화제가 전환되고 반복적으로 시선 안에 들어오는 풍경이 분위기를 형성한다. 같은 가을 하늘 아래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눈에 청명한 하늘이 보이는가, 바닥에 뒹구는 낙엽을 보는가에 따라 캐릭터가 형성되고 마음의 형상이 구체화된다.


시선만으로 갈등을 만들 수도 있다.


-(예시) 그는 항상 내게 말할 때 내 눈이 아닌 내 왼쪽 어깨너머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리면 아무것도 없었다. 내게 결혼하자고 할 때도 내 뒤의 벽을 보며 청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내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애인이 생겼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급하게 떠올린 예시라 구리긴 하지만, 그의 시선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뒤이어 벌어질 일을 암시할 수 있다.


수많은 공 중에 너로 정했다


이 세계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기준으로 재구성된다. 거실에 드리워지는 빛이, 창틀에 잠시 앉은 새가, 내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우리의 시선이 닿는 순간 의미가 부여된다. 세계를 구성하는 입자의 수많은 가능성들은 우리의 시선이 닿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고정된다. 나의 시선 속에 '너'가 고정되고 수많은 '너'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언제 부모가 되는가?


신생아 시기 아이의 눈동자는 제멋대로 움직였다. 아직 초점이 잡히지 않는 아기들의 눈은 색깔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눈 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흑백 모빌을 바라보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수유하거나 기저귀를 간 뒤 아이를 안아 얼굴을 보면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아이를 보는데 아이는 나를 보지 못한다. 어긋난 시선 속에서 나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아기 인형을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다 고개를 드니 거실 아기 식탁의자에서 나를 바라보는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나를 발견한 아이는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를 묻힌 입을 벌리며 환하게 웃는다. 점퍼루를 타다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분주히 고개를 돌리며 나를 찾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안심한 표정으로 웃는다. 화장실에 있거나 집안일을 하느라 내가 보이지 않으면 내가 볼 때까지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른다. 아이의 시선 속에 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엄마엄마 여기있네~


생후 8개월이 지난 아이는 낯선 사람을 보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얼굴을 놓치지 않겠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너'를 쳐다본다. 나와 남편을 볼 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웃는다. 낯선 '너'가 아니다. 우리는 아이의 세계 속에서 익숙하고 다정하며 유일무이한 존재다. 아이는 기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우리 역시 기쁨 속에서 웃는 아이를 응시한다.


우리는 언제 부모가 되는가? 여러 순간이 있고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우리는 아이가 우리를 똑바로 바라본 순간 부모가 되었다. 아이의 시선 속에서 우리는 부모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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