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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Nov 05. 2020

인간은 직립보행의 동물이어라

300일 아기 일상  : 걷기 연습

이것은 인간의 성장이라기보다 인류의 진화 과정이라고 불러야지 않나? 100일 이후 첫 뒤집기 성공에 이어 되집기, 배밀이, 기어 다니기, 스스로 앉기, 잡고 일어서기, 그리고 300일을 넘긴 지금 걸음마 보조기에 의지하여 두어 발 걷기까지, 아이는 직립보행의 준비를 마쳤다. 어제는 내가 바닥에 앉아 있으니 재빨리 기어 와서 내 상체를 붙잡고 일어서서는 잡고 있던 손을 뗐다. 넘어져도 엄마가 잡아주리란 확신이 들었는지 용기를 낸 것이다. 잠깐이었지만 아이는 두 발로 섰다.


아빠 손바닥도 내 바닥이어요


스스로 뒤집기에 성공했다고 감격에  글을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데, 아이는 벌써 걸을 준비를 한다. 소파든 티브이 선반이든 뭐든 잡고 일어서서는 일어선 자신을 신뢰할 수 없어 쪼그리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선다. 영락없는 스쾃 자세. 그렇게 단련한 다리 근육을 써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게걸음을 한다.     저기 소파 위에 엄마 휴대폰이 보이면 집어 들기 위해 빠르게 발발발, 저쪽에 리모컨이 보이면  발발발, 스마트폰보다도 작은 쪼그만 발이 분주하다.


하체운동의 꽃 스쿼트~


발도 바쁘고 손도 바쁘다. 장난감 같은 손으로 눈에 띄는  잡고 보는데, 손끝으로 만져도 되는지 신중히 탐색한  잡을  있다 판단되면 거침없이 잡아 자기 쪽으로 당긴다. 장난감바닥에 뿌려두고 나면 어느새 트롤리에서 과자봉지를 꺼내 흔들고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양장본을 자꾸 만지려 시도하기에 어디   잡아 보시지 하는 마음에 내려놓았더니  무거운 책을 들어 올렸다. 무엇이든 흔들면 소리가 나거나, 입에 넣기  좋아 보이거나, 엄마 손에 있는 것이면   손에 넣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어디 엄마가 읽어도 되는 책인지 내가 좀 점검해야겠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발로   있도록 진화하여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도구를 발명하게 되고 문명을 이룩하게 된다. 직립 보행이 인간에게 손을 주었다. 확실히 100 이전 속사개로 싸여 꿈틀거리던 미생물st 시절보다 지금이 진짜(?) 인간처럼 보인다. 눈으로 탐색하고,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이루기 위해 손과 발을 움직이고,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과정을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


처음 두 발로 걷게 된 인간이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와 목도한 세계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바닥에서 생활한 2차원의 세계를 벗어나 3차원의 세계로 진입한 돌을 앞둔 아이 눈에 우리 집은 또 얼마나 신기한 것들 투성일까? 일어선 채로 휴지케이스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줄줄 뽑아내는 아이를 나는 막지 않았다. 잡아당기는데 멈추지 않고 나오는 휴지의 마법에 홀려 아이는 그대로 서서 한참을 집중했고 나는 그 틈에 설거지를 무사히 마쳤다. 휴지를 내주고 설거지를 얻었다... 고 안심한 찰나 아이는 뽑아낸 휴지를 뜯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저지레를 지켜보았다. 휴지가 솜털처럼 날아오르고 아이는 환희에 차서 웃었다.


우리는 거실에 베이비룸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집이 좁기도 하고 아이가 집을 탐색하며 노는 일을 막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가드를 사서 설치하고 관리하는 게 귀찮았다. 집을 치우는 게 더 귀찮은 거 아닌가 하면 할 말 없지만 위험한 물건들은 미리 치우고 아이가 놀 때 옆에서 보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의외로 아이는 마구잡이로 물건을 잡아당기거나 가구에 돌진하는 대신 조심스러운 손길로 탐색부터 시도했다. 아이의 성격이 호기심보다 신중함이 앞서는 타입이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더 크면 장난감을 티브이에 던지고 서랍 다 열어젖히고 매직으로 예술혼을 불태워 엄마 심장 불태우는 시기가 오겠지만, 그때는 베이비룸이고 뭐고 다 부수고 열고 다닐 정도로 힘이 세지지 않을까... 하여 우리 집은 신중한 탐구자에게 활짝 열려 있다.


티브이에 남은 손자국 정도는 양호하지..


오늘의 탐구자께선 에듀테이블에 의지하여 두어 걸음 걷기 연습을 하시고 스스로 그림책을 넘겨보시다 무엇이 마음에 안 드셨는지 짜증을 내시다 기저귀 휴지통 뚜껑을 두드리면 북처럼 울린다는 사실을 발견하신 뒤, 이유식과 분유와 고구마와 사과를 잡수시고 꿀잠에 드셨다. 내일은 서너 발자국, 다섯, 여섯, 그렇게 하루 한 걸음씩 걷다 보면 어느새 앞으로 걸어갈 일만 남았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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