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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Nov 19. 2019

태교일기를 쓰라는데요

임산부의 감정 다스리기

소설은 결국 감정의 이야기다. 삶의 기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울과 절망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각자의 사랑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는지 쓰고 읽는 예술이다. 임신과 출산을 소설로 쓴다면 어떤 감정이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할까. 내 감정도 헤아릴 틈도 없이 입덧이 내 몸을 점령했고 해야 할 일들이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내가 거주하는 지역 보건소에서 예비맘 태교교실이 열린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병원에서 심장 소리를 듣고 임신 확인서와 임신 수첩을 수령해야 보건소에서 임산부 등록을 할 수 있다. 엽산 한 꾸러미와 동그란 핑크 배지를 받아 든 나는 정부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임산부가 되었다.      


임산부는 핑크색입니다


 태교교실 첫날, 간식을 받아 들고 강의실에 들어서니 제각기 배 크기가 다른 임산부들이 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자리를 잡았다. 태교 수업이니 태교가 중요하다고 당연히 이야기하겠지? 그때는 태교가 무엇인지 어렴풋한 이미지만 품고 있었다. ‘엄마의 행복이 곧 아이의 행복이다...’ 같은. 그렇다면 임신의 주인공은 행복감일까? 죽고 못 사는 커피와 반강제로 이별한 지금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태교의 사전적 정의는 ‘아이를 밴 여자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삼가는 일’(표준국어대사전)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임신 34주 차에 처음 알게 된 태교의 뜻에 나는 깜짝 놀랐다. 좋은 마음을 먹는 것을 넘어서 나의 말과 행동까지 조심해야 하는 섬세한 수양의 자세가 태교였다.      


태교 : 마음을 바르게 하고 언행을 삼가는 일


이토록 고귀한 태교를 배우기 위해 달려온 내게 강사님은 표지에 꽃이 가득한 노트 한 권씩 나눠주었다. 오늘은 태교 일기를 쓰는 방법을 배우는 날이라고. 소설 쓰기는 배웠어도 일기, 그것도 태교 일기 쓰기는 처음 배우기에 긴장이 되었다. 태교 노트는 페이지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사이에 ‘아기라는 선물’, '엄마는 아기를 위해 하느님이 보낸 천국의 천사다'같은 문장이 숨어 있는 물건이었다.      


빈틈없이 만발한 꽃밭에 거부감이 든 나는 반쯤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로 강의를 들었다. 강사님의 이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예 태교 일기를, 지금 이 글을 쓸 생각을 접었을지 모른다.      



"사춘기에 들어선 중학교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 강연에 가면 저는 태교 수업을 합니다. 무슨 말이냐? 그때 되면 아이는 부모와 하루 한 시간도 같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죠. 대화를 안 하려 해요. 그럼 저는 학부모님께 질문해요. 아이를 임신하셨을 때부터 태아에게 말을 많이 해 주셨나요?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 어떤 기분이었고 어떤 느낌이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내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그걸 물어볼 생각 자체를 한 적이 없다. 엄마 옆에서 재잘대기 바빴던 나는 어느 순간 방문을 닫아걸고 종이에 그림이나 일기로 혼자 감정을 정리하며 사춘기를 통과했다. 상상의 친구를 만들어 만화를 그리고 이야기를 썼다. 내 대화 상대는 엄마가 아닌 허구의 캐릭터들이었다.     


 내가 침묵할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이를 처음 가졌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순간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임신을 원했지만 이번 달은 아니기를 바랐다. 산전검사도 받지 못하고 엽산도 미리 챙겨 먹지 않았고 대책 없이 술만 마셨다. 임신을 확인하고 기쁨과 당황이 뒤섞인 감정은 쉽게 해석되지 않았다. 나라는 자아가 센터에서 밀려나 파트 분배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돌 그룹의 비인기 멤버가 된 느낌? 이제 먹는 것 하나 보고 듣는 것 하나도 내가 아닌 또 다른 존재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은근히 압박했다.     


이 날 이후로 소설과 함께 태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소설을 나를 위해 쓴다. 예상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쓰는 것이 기본 원칙 중 하나지만, 나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쓴다는 원칙으로 소설을 대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프랑스어로 사탕이라는 뜻의 봉봉이라는 태명으로 부르는,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너를 위해.     


 우리는 너를 간절히 원했고 네가 우리에게 오기를 기다렸다. 최선을 다해 태교를 하며 너를 기르고 너를 지킬 것이다. 다만 네가 우리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순간 우리가 느낀 감정은 기쁨과 두려움이었다. 나는 나라는 존재를 간수하기도 어려운데, 한 생명을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까? 크게 아프거나 누군가에게 고통받거나 우리의 잘못으로 비뚤어지면 어떡하지?

 네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날 낯설고 두려워 울음을 터뜨리듯이 우리는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부모가 된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다. 이 감정, 기쁨과 두려움이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느낌을 잊지 않고 언젠가 네게 말할 것이다. 말이든, 글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너와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당황에서 두려움, 슬픔, 우울과 함께 기쁨, 놀람, 사랑까지 세상 모든 감정이 내 일기장 안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안녕, 반가워 감정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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