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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May 03. 2020

육아라는 감정 노동

4개월 아기 요로감염 입원기

지난주 입원 전 '감정의 온도 맞추기'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었다. 육아에 있어 급격한 감정 변화는 아이에게 좋지 않기에 부모는 분유포트의 온도 설정 버튼과 같이 감정의 온도를 일정 수준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웬만해선 화를 잘 내지 않는다. 감정이 요동치는 임신 기간에도 딱 하루를 제외하고는 평온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의 부모님이 분노나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내 앞에서 크게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나 역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성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아이 앞에서 화를 내거나 우울한 모습을 쉽게 보이지 말자 다짐했다.


4개월이 된 아이가 요로감염에 걸렸고 순식간에 신우신염으로 퍼졌다. 급히 달려간 병원 응급실은 고열의 아이를 코로나 핑계로 증상을 의심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이와 보호자인 나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고 긴 시간 대기한 끝에야 입원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길어진 입원 5일 차에 위기가 찾아왔다.


손에 마우스...아니 링거를 꽂은 아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퇴근한 남편과 교대로 아이를 돌볼 수 있었으리라. 잠시 아이와 떨어져 체력을 회복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휴식시간이 필요했지만, 코로나를 막기 위해 입원 병동의 문이 굳게 닫히고 나 이외의 다른 보호자는 면회조차 할 수 없었다. 퇴원까지 하루 24시간 내내 나 혼자 아이 옆을 지켜야 했다.


토요일 입원 후 수요일 예정이었던 퇴원은 소변검사에서 균이 검출되어 토요일로 미뤄졌다. 입원 하루 만에 열은 다 내렸고 아이는 평소처럼 잘 먹고 잘 자고 옹알이를 하며 활발하게 놀았다. 하지만 눈으로 보기에 괜찮다고 다 나은 건 아니니까, 망할 세균이 내 아이의 몸속에 아직 남아 있다니까, 길어진 입원을 받아들였다.


이 분노는 어디에서 왔나


이른 아침 목청 큰 아이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기저귀가 넘쳐 옷과 침대 시트까지 다 젖어 있었다. 수액을 맞고 있어 평소보다 소변을 훨씬 자주 보기에 기저귀를 자주 확인해야 했다. 항생제가 설사를 유발할 수 있기에 하루 세 번 유산균을 먹였고 원래도 대변을 잘 보던 아이는 방귀 뀌듯 똥을 쌌다. 발에 링거를 맞고 있어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엉덩이를 닦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요즘 두 발을 비비는 버릇이 생겨 한 번 바늘이 빠졌고 새로 혈관을 찾아 간호사 세 명이 달라붙어 다시 바늘을 꽂는 일에 30분 넘게 걸렸다. 혹 발을 버둥거리나 바늘이 빠질까 두려워 머미쿨쿨 좁쌀이불로 다리를 감싸 놓았다.


신생아 때도 3-4시간은 잤던 잠을 2시간 간격으로 깨서 기저귀와 링거를 확인했다. 허리 안에 젖은 모래가 가득 찬 것처럼 묵직한 통증이 가시지 않았고 손목과 무릎이 시큰거렸다. 아이가 깰까 두려워 머리를 감거나 샤워하는 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피곤이 엉겨붙어 머리를 짓눌렀다.


보호자 식사를 신청했다. 아침마다 군고구마가 나오는데 이게 제일 맛있었다.


목요일 밤 평소라면 이미 잠들었어야 할 시간에 아이는 한 시간 가량 몸부림을 치며 엉엉 울었다. 역대급 잠투정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와 아이를 덮쳤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아이를 떨어뜨릴까 무서워 온 힘을 다해 안았다. 귓가에 울음소리가 칼날처럼 내리 꽂혔다. 우는 아이도 달래는 나도 온몸이 땀에 절어 축축했다. 제발 좀 자라, 왜 이렇게 우는 거야,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날카로워졌다.


내가 화를 내고 있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분명히 알고 있다. 아이의 울음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배고픔, 젖은 기저귀의 불편함, 주사 바늘, 집이 아닌 낯선 환경. 아이는 잘못한 게 없고 나는 충분히 이해했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달랬다. 달래면서 화를 냈다. 제발 그만, 이제 그만, 그만.


아이도 나도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 하나 없는데 이 분노는 왜, 어디서 타오르는 것인가.


정신을 차리니 내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바닥에 손톱을 깊이 찔러 넣을 정도로 강하게. 출산 당일 무통주사가 듣기 직전 진통을 가장 강하게 느꼈을 때 이렇게 주먹을 쥐었다. 손톱 끝에 온 몸의 고통을 끌어모아 손안에 찔러 넣었다. 그때처럼 분노의 감정을 그러모아 새어나가지 않도록 주먹을 쥐었다. 누구에게도 이 분노의 칼끝이 향할 수 없도록.


처음으로 쓴 마스크는 혀로 맛보느라 침범벅ㅋㅋ


육아라는 감정 노동

육아는 노동이다. 그것도 고도의 감정노동이다. 내가 섬기는 고객은 나보다 약하고 여린 존재라 나의 감정과 행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에 장기적으로 노출된 아이 뇌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부모 아래 자라난 아이는 제대로 된 정서 발달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안정적이고 차분한 감정 속에 아이를 대하겠다는 육아 원칙을 가장 먼저 세웠고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거의 일주일을 채워가는 입원 기간 퇴근 없는 24시간 풀 근무에 번아웃이 온 것이다.


속눈썹이 젖을 정도로 운 아이를 안으며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거듭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닌데,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 목소리 크게 내서 미안해. 한참 뒤 아이는 잠이 들었고 나는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망연히 앉아 내 분노를 마주 보았다. 이 분노는 불꽃이라기보다 오래 끓인 액체 같은 것이어서 주먹 쥔 손에 남은 불쾌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격렬한 고통을 안겨준다. 양가감정이라는 고통이다. 나는 쓰라린 분노와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 더없는 행복에 대한 감사와 애정 사이를 죽을 뜻이 오간다.

- 에이드리언 리치 [분노와 애정]


분유 맛있어서 행복해?^^


내가 약해진 틈을 타 뛰쳐나온 분노는 내 앞에서 알짱대며 약을 올린다. 엄마가 되어가지고 애한테 화를 내야 쓰겠어?


나는 분노의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엄마도 사람이고 사람은 자연스럽게 화를 내고 다만 지금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지금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는다. 이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분명히 파악하고 아이 외의 다른 곳으로 유인한다. 나는 지금 화가 났고 이 화는 아이 잘못이 아니다. 분노를 손쉽게 정당화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직시한다. 손톱으로 손바닥을 누르듯 펜 끝으로 종이 위에 분노를 눌러놓는다. 아픈 아이는 곧 회복할 것이고 우는 아이는 자고 일어나 방긋 웃으리라.


잠든 아이 옆에서 글을 쓰며 내 감정을 명확히 묘사하려 애썼다. 사랑과 분노가 동시에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무분별한 감정의 패악질로부터 나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푹 잔 뒤 아이는 맑게 웃었고 나는 흔들림 없이 아이를 안아주었다.


이틀 뒤 우리는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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