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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Mar 15. 2021

시지프스는 육아를 한다

육아라는 '허무함'에 대해

내가 가장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형벌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가 받은 '영원한 노동'이다. 온몸으로 집채만 한 크기의 돌덩어리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는 형벌, 끝이 보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노력이 무의미로 돌아가버리는 노동의 허무함.


낮잠에서 깬 아이가 딱 5분 만에 집을 어지럽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시지프스를 떠올렸다. 아이 책장에 크기별로 꽂혀 있던 그림책들이 전부 바닥에 널브러지고 장난감 바구니는 제 속에 든 것을 토해냈다. 내가 서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 아이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오는 길에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들 수납해 둔 3단 트레이 탐방도 좀 하고, 거기서 발굴한 면봉 상자를 자랑스럽게 손에 쥔 채로 서재 입성한 아이는 자신의 전리품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책장으로 돌진한다. 수차례의 공격을 받아 온, 밑에서 두 번째 칸의 민음사 전집들이 무력하게 파괴자의 손에 자신을 내맡긴다. 전부 한 시간 전에 깨끗이 치워놓았던 것들.


파괴의 시간


육아가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그를 지배하는 가장 큰 감정은 무엇일까. 무슨 일을 하든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며 문득 허전하고 쓸쓸한, 아무도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고 헛되이 느껴지는 이 감정. 우리는 그 마음을 '허무하다'고 표현한다. 저기 육아가 5분 만에 되돌아온 폐허의 한복판에 주저앉아 있다. 눈동자는 텅 비어 있고 살짝 벌린 입은 말을 잊었다. 


정상에 도달한 시지프스의 바위는 바닥으로 다시 돌아가고, 깨끗하게 정리된 집은 혼돈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고, 치우고 어지럽히고 치우고 어지럽히고 영원한 반복의 노동. 책을 꽂고 있으면 옆에 딱 붙어 꽂은 책을 다시 꺼내기도 한다. 건조대에서 얌전히 마르고 있어야 할 빨래들이 거실과 부엌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가구와 바닥 틈새로 바퀴 달린 장난감들이 주차되어 있다. 서재를 들쑤시던 아이는 나도 까먹고 있었던 잡지를 한 권 발견하고 그 자리에 앉아 페이지를 넘긴다. 약 5분 간의 평화 속 집 안의 물건들이 한 숨 돌린다.


방문을 닫아두면 되지 않아요? 치우고 치우다 한계에 도달한 내가 문을 닫으면 그 앞에서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데, 마치 좀비 영화에서 숨어 있는 인간을 찾아낸 좀비처럼 절박하게 울부짖는다. 막상 문을 열어주면 특별히 뭘 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출입을 막는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안 드시는 듯. 그래서 베이비룸이라 불리는 아기 울타리를 들이지 않았다. 좁은 집 안 설치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아이를 한정된 공간에 두는 게 개인적으로 보호보다 제한의 느낌이라 꺼려진 이유도 있었다. 신중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아이 성격과 잘 맞아떨어져 자유롭게 집 안을 돌아다녀도 큰 문제는 없다. 물론 손에 닿으면 안 되는 물건들은 전부 치워놓고 필수적인 안전장치들을 설치했다.



집 안에서 스스로 놀이를 찾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아이가 기특하다. 기특하면서 가끔씩 숨이 막힌다. 면봉 상자 하나에, 내 안경 하나 가지고 저렇게 집중하는 아이 주변에 잔뜩 어지럽혀진 다른 물건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 아이에게 세상은 온갖 의미로 가득 차 있는데, 나는 그 뒤를 쫓아 치우고 또 치우는 무의미를 반복할 뿐인가.


육아를 힘들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게 가치가 없다는 허무한 감정이다.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깨끗이 씻겨 반짝반짝 빛나는 내 아이가 활짝 웃는 모습은 아름답고 뿌듯하다. 뿌듯하면서도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블록을 쌓고 있으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같은 질문이 튀어나와 내 머리채를 잡는다. 이 시간에 일을 한다면, 돈을 벌고 경력을 쌓는다면,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유형의 가치들을 얻는다면, 육아라는 일은 매달 지급되는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적이 불분명하다.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옷을 입고, 학교를 가고, 오은영 선생님이 말한 육아의 궁극적 목적인 '독립'을 향해 열심히 일한 내 노동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한 인간을 잘 키웠다는 칭찬 한 마디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


나의 노력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평가받는 건 싫다. '집에서 애나 봐'에 깔려 있는, 육아를 폄하하는 시선을 거부한다. 저기 저 사람을 보라며, 저렇게 노력해도 어차피 바위는 다시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라며 비웃는 손가락들을 쳐낸다. 여기에 사람 있어요, 사람을 키우는 사람 있어요, 이 아이는 곧 말문이 트이고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수백 수천 번 들려줄 겁니다. 내가 굴린 이 바위가 얼마나 매끈하게 잘 다듬어졌는지 한 번 만져보십시오. 이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들어 올리고 어떤 각도로 깎아내어 굴리는지 그 과정과 노력은 내가 남긴 기록들을 참고하십시오.


평화의 시간


나의 노동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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