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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Mar 15. 2020

잊고 있던 순수한 기쁨으로

아기의 웃음

새벽 4시 배고픔에 잠이 깬 아이가 낑낑 소리를 내며 잠든 부모를 깨운다. 창밖은 아직 어둡고 잠이 덜 가신 두 눈 앞도 깜깜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눈을 비비며 수유쿠션을 허리에 찬다. 쿠션을 써도 구부정한 수유 자세가 허리를 압박한다. 3시간 이하 토막잠으로 연명하며 제대로 쉬지 못한 뇌가 물 먹은 솜이불처럼 묵직하고 답답하다. 잠에 취해 아이를 안아 등을 쓸며 트림을 시키고 바닥에 눕혀 밤새 묵직해진 기저귀를 갈아 준다.


아이가 웃는다.


기저귀를 갈고 다리를 마사지하고 꼭 쥔 손에 내 손가락을 쥐어 준다. 아이가 나를 보고 웃는다. 아이의 두 손을 맞잡고 손뼉 치기 놀이를 한다. 아이가 잇몸을 환히 드러내며 웃는다. 침대에 눕혀 타이니러브 모빌을 틀어 준다. 온몸으로 춤을 추며 소리 내어 웃는다. 세상모르게 웃는다.


세상에서 제일 즐거워!


아이의 웃음에 머리꼭지 가득 차 있던 피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기쁨이 온몸에 가득 찬다. 미세먼지 자욱한 거리처럼 잿빛으로만 보이던 이 세상에 어둠이 걷히고 모든 사물이 맑게 빛난다.


아이의 미소 한 방에 세계가 달라진다.


나는 지금 행복해요


생후 50일이 지나 배냇짓으로 근육의 씰룩임이 우연히 만든 미소만 지을 줄 알던 아이가 본격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허공에 주먹질하는 두 손을 잡아 손뼉치기를 하거나 다리를 잡고 하늘자전거 타기를 시키면 아이는 잇몸을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끼워 몸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면 두 다리가 바닥에 닿는 느낌을 만끽하며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웃는다. 역류방지쿠션에 누워 제 두 손을 보며 열중하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웃는다.


세상에 태어나 무섭고 두려워 종일 울던 아기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각보다 세상이 살 만하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탯줄이 끊어지고 제 힘으로 젖을 빠는 건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힘든 일이지만,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다는 만족감을 알게 된다. 양수에 감싸여 부드럽게 움직이던 육체의 무게가 무겁고 힘겹지만 엄마 아빠의 손길이 부드럽고 시원함을 깨닫는다. 배고프고 기저귀 젖는 느낌이 싫지만 배가 차고 뽀송해질 때 행복하다는 것을 배운다.


의자가 흔들리는데 승차감이 좋아요!!


마음의 긴장이 무너지고 피부에 닿는 감촉과 욕구가 충족된 만족감을 습득하게 되면서 아이는 진심으로 웃기 시작한다. 울음이 동물적인 본능이라면 웃음은 삶에 대한 의사표현이다. 이 삶이 고통만 있지 않다는 것, 엄마 뱃속의 편안함만큼이나 눈을 맞추고 엄마에게 안기고 아빠에게 마사지를 받는 것이 짜릿하고 기분 좋은 일이라는 사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안아줄 때 느끼는 행복을 깨닫고 아이는 웃는다.


기쁨이 기뻐서 웃는다


평소에 잘 웃지 않던 나와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고 수시로 웃는다...라고 쓰면 뭔가 감동적인 결말 같지만 사실 나도 남편도 웃음에 후하다. 서로 눈만 마주쳐도 껄껄 웃는다. 지금 이 글도 흐흣흣 웃으며 쓰고 있다.


어른인 우리에게 중요한 건 웃음의 빈도가 아닌 웃음의 기술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전혀 웃기지 않은 상사의 농담에 웃을 줄 아는 기술, 어색해진 자리에서 웃음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기술, 서서히 능숙해지는 ‘사회적 웃음’ 기술.


내 말에 친구가 웃는다. 정말 재미있어서 웃을 수도 있고, 우리의 친분을 생각하며 예의상 웃는 걸 수도 있고, 어이가 없어 (비)웃는 걸 수도, 웃기지도 않는 말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순진함이 안쓰러워 웃을 수도 있다.


웃음이란 복잡하고 미묘한 생명체다.


주먹울음 아니고 주먹웃음^ㅁ^


태어난 지 이제 막 두 달 된 아기는 오직 행복해서 웃는다. 지금 이 순간이 만족스러워서, 엄마와 아빠가 나를 보고 웃으며 안아 주는 현재의 생생한 감각이 한없이 기뻐 웃는다. 아기의 웃음이란 단순하고 무한한 기쁨이다.


지극히 순수한 아기의 웃음에 우리도 웃는다.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아서, 우리를 닮은 이 생명이 슬픔이 아닌 기쁨을 표현한다는 사실에 벅차올라서, 기쁨이 기뻐서 웃는다. 이 웃음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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