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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Apr 28. 2020

코로나 시대 아이가 입원했다

4개월 아기 요로감염 입원기

뜻밖에 뒤집힌 세계


세계는 인간에게 대체로 무심하다. 기쁜 나와 춤추지 않고 슬픈 나를 안아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 첫 출간과 임신 시기를 맞춰 주고 조리원 퇴소일에 선물로 우한 폐렴 뉴스를 준비해 준 세계는 꼭 무뚝뚝하지만은 않나 보다. 


신생아와 함께 갇힌 집 안에서 바라본 현관문 밖은 마스크를 끼고 손을 소독하고 열을 체크해야 하는 강박의 세계로 바뀌었다. 나가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렇게만 생각했다. 터무니없이 쉽게.


금요일 오전 평소처럼 바운서에서 노는 4개월 된 아이가 평소와 달리 힘이 없어 보였다. 이마가 뜨거워 브라운체온계를 귀에 대니 38.3도, 동네 소아과에서 해열제 처방을 받고 아이가 열이 나는 다양한 원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감기, 요로감염, 돌 발진, 가와사키 병, 밤새 오르락내리락하는 열을 지켜보며 돌 전 아기의 열이 난 사례들을 읽고 또 읽었다.


토요일 소아과 소변검사 결과 요로감염이 의심된다는 소견서를 받았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으나 그리 좋지 않은 결과를 안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으로 향했다. 지금은 코로나 대유행 시기였고, 우리가 가는 병원은 코로나 초기 병원 내 감염으로 한 번 크게 앓았던 곳이었고, 아이는 지금 열이 나고 있었다. 응급실 문 앞에서 우리는 아이의 발열 증상이 문제 되어 선별 진료소로 들어가야 했다. 발열의 원인이 명시된 소견서가 있음에도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대응이었다.


돌 전 아기의 요로감염은 그 자체로도 빡센 질병인데, 코로나까지 겹치니 병원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험난했다. 뉴스에서 보았던 전신에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들이 눈 앞에 있었다. 계속되는 본인 확인과 열 체크, 무한 대기, 문 하나 넘어가면 또다시 확인과 체크, 다른 병원에 갈 여유는 없었다.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병원 직원의 지시에 따라 병원 문 앞을 맴돌았다. 유리로 가로막힌 선별 진료소에서 소아과 의사를 만나 스피커를 통해 진료를 받았다.


한 시간 만에 들어간 응급실에서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받고 링거를 맞았다. 돌멩이보다 작은 저 주먹에 바늘이 들어간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검사 결과 요로감염 확진을 받았지만 환자와 보호자 1인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와야만 입원이 가능하단다. 국수 면 같은 가느다란 면봉이 아이와 내 코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매운 검사에 아이는 맵게 울었다.


침대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아가..
뜻밖의 격리


요로감염은 기본 5일 이상 입원이 필수다. 거기에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 1인 외 다른 보호자 입실 금지, 면회 금지, 입실한 보호자 역시 외출 금지, 외부인과 접촉 금지 원칙이 생겼다. 응급실 문 앞에서 남편과 헤어지고 퇴원까지 만날 수 없다. 요로감염 확진 후 코로나 음성 판정까지 5시간을 응급실에서 대기했다. 입원 수속을 하고 병동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은 남편은 뒤에 남았다. 그렇게 황망히 우리 가족은 갈라졌다.


아이와 나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으나 코로나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었다.


한편으론 안심되었다. 몇 겹으로 된 보호막을 친 이곳만큼은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니까. 아이의 신장 검사를 위해 아래층 외래진료자들과 마주치기도 했으나 병원은 외래-입원 환자 엘리베이터를 분리하고 이송 직원이 세심하게 동선을 겹치지 않게 했다. 엄격해진 입원 절차로 병동이 한산해 소아병동 4인실을 우리만 쓸 수 있었다.


눈치없이 풍경은 좋아?


12층 소아병동 4인실 창가 옆 침대에 아이를 눕히고 필요한 물품 목록을 남편에게 전송했다. 약 5일간의 입원 생활을 위해 아이도 나도 필요한 게 산더미였다. 물건은 직접 받지 못하고 안내데스크를 통해 전달받아야 했다. 짐을 정리하고 지쳐 잠든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창 밖을 보니 온통 초록이다.


아이가 아픈데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내가 징그럽다.


열이 난 아이 옆에서 상상했던 최악의 상황이 코로나 감염이었다. 나나 남편이 무증상 감염자라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전염된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원인 불명의 병이라는 가와사키 병이나 기타 희귀병들이 내 상상력을 마구 찔러댔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고 요로감염이라는 명확한 병명이었다. 치료 가능한 병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한 나 자신을 책망했다. 애가 아픈 게 다행이야? 요로감염이 다행인 병이야?


열이 나는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며 우리는 낙관했었다. 별 일 아닐 거라고, 금방 나을 거라고, 우리 아이는 건강하다는 막연한 낙관은 아픈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병원에 올 줄 몰랐다. 링거를 꽂은 작은 손 앞에서 우리는 낙제점을 받은 학생처럼 잘못을 찾아 과거를 샅샅이 뒤졌다. 기저귀를 너무 늦게 갈아 줬나? 장난감 세척을 제대로 하지 않았나? 일찍부터 유산균을 먹였어야 했나?


나는 부모 되기에 낙제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코로나로 유모차 타고 외출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었던


요도를 통해 침입한 세균들 때문에 열이 펄펄 난 아이의 고통을 알 방법이 없다. 대신 아플 수 없고 같이 아플 수 없다. 선별 진료소의 유리 벽처럼 눈 앞에 아이의 모습이 또렷한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목이 쉬도록 우는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팔이 저리도록 꼭 안아 달래는 방법뿐.....


아이가 잠든 병실은 고요하다. 한적한 입원 병동 안 지루함에 가까운 적막 앞에서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마음을 멱살 잡고 끌어올려 쓴다. 너 지금 우울해하고 있을 여유 없어. 아이가 완쾌하고 퇴원할 때까지 네 영혼과 체력은 아이 것이야. 불필요하게 자책하지도 터무니없이 위로하지도 말고, 분유 타고 기저귀 갈고 계속 안아 줘.


그렇게 모자는 일주일 간 병원에 격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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