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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돌잔치 후기

줌으로 치러진 아이의 첫 돌잔치

by JiwooRan Dec 28. 2020

아이야, 네가 태어났을 때 중국 우한이라는 도시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네가 한 살 되는 날 그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집어삼켰단다...소설을 이렇게 쓰면 우연을 남발한다고 욕 많이 먹을 것 같다. 차라리 지금의 상황이 소설 속 설정이라면, 일 년이 지난 지금 기적처럼 슈퍼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결말로 건너뛰고 싶은데, 현실은...


지난 토요일로 예정되어 있던 아이의 첫돌 행사 2주 전, 확진자 천 명 돌파 뉴스를 보고 예약해 두었던 식당에 연락했다. 식당 직원은 몹시 안타까워하며 예약금 전액을 바로 환불해 주었다. 돌잔치 3일 전, 수도권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떨어지고 나와 남편은 각자 집에 연락해 줌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부모님들은 각자 앱을 깔고 회원가입을 하고 화상으로 만나 서로 안부를 나누었다. 집에서 손님 없이 하게 되었다는 내 연락에 돌상을 대여했던 업체에서는 요즘 그런 집들 많다고, 전혀 걱정하지 마시라고 나를 위로했다.


우리 가족 3+ 라움돌상 실장님 1인 5인 이하 돌잔치우리 가족 3+ 라움돌상 실장님 1인 5인 이하 돌잔치


1년 전 오늘 진통 10분 주기를 체크하면서도 족발을 먹으며 <나 혼자 산다>를 보며 깔깔거릴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던 미래, 코로나가 패악을 부리며 가족과 친구들을 찢어놓았다. 강제로 멀어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위로를 전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예약했던 식당에서는 코로나가 끝나고 난 뒤 언제든지 방문해 달라며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하고 돌상 대여 업체는 최선을 다해 아이의 첫 생일을 축하해 주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낯선 줌 사용법을 열심히 배워가며 모니터 속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전 11시 아이가 낮잠에 든 틈에 거실 소파를 옮기고 바닥을 닦았다. 식탁이 없어 책상을 놓고 각도를 점검했다. 돌상 업체 실장님이 수레 가득 짐을 싣고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실장님 주도 아래 책상 위치를 조정하고 상이 차려졌다. 잠에서 깬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달라지는 거실 풍경을 바라보았다.


세자저하 포스세자저하 포스


오후의 빛이 깃든 우리 집 거실의 돌상은 꽤 그럴듯했다. 가림막으로 뒤를 막고 흰 천이 깔린 책상 위 꽃과 과일과 떡 가운데 서서 시험 삼아 찍어 본 사진도 기대 이상이었다. 재빨리 아이 한복을 입히고 줌을 켰다. 부모님들은 화면을 통해 우리가 쉼 없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관람하셨다. 남는 건 사진입니다! 오랜만에 꺼낸 내 DSLR로 실장님이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시고 우리는 계속 웃었다. 실장님의 사회 덕분에 돌잡이도 무사히 치렀다. 모니터를 통해 전달된 가족들의 환호성 속에 아이는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 비대면인 걸 제외하면 내가 원했던 작은 돌잔치였다. 직계가족만 모여 아이가 이 세상에서 무사히 첫 1년을 지낸 걸 축하하는 자리이길 바랐다. 돌잔치의 진짜 주인공은 엄마라거나 돌끝맘 같은 단어들을 개인적으로 환영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했던 서툰 신입일 뿐이다. 첫 1년의 평점으로 5점 만점에 3점 정도를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하다.


줌으로 치러진 돌잔치라니줌으로 치러진 돌잔치라니


올해 초 조리원 퇴소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불안과 분노를 뿌려대며 초대받지 않은 잔치에서 행패를 부렸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병에 걸릴 수 있고 바로 다음 날 죽을 수도 있다. 네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폭탄이 될지도 모른다. 무사, 평안 같은 가치가 이토록 귀하고 지키기 어렵다는 걸 올해 뼈저리게 느꼈다.


두개골도 다 닫히지 않은 신생아를 키우면서 우리는 그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요로감염을 제외하고 크게 아픈 데 없이 무사히 커 준 은수, 서로를 믿으며 보통의 일상을 지켜낸 우리 부부, '우리 셋이 산다'로 타이틀이 바뀌고 방영된 이 예능의 첫 1년을 축하하며 모니터 속 손바닥만 한 화면에 비친 가족의 가족들이 박수를 친다. 이번 방송의 평점은 3.5 정도는 받을 수 있겠다.


그리고 아들은 돌잡이로 마이크를 잡았다 ㅋㅋ그리고 아들은 돌잡이로 마이크를 잡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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