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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산책 Feb 10. 2021

안녕 한국.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한 달의 시간이 예정돼 있다 해도 언제나 고향에서의 시간은 번개처럼 흘러간다. 그 이유가 반가운 내 사람들을 한꺼번에 보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에 바쁜 하루하루는 더 소중하다.
그렇게 함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나의 시간을 함께 해온 사람들과의 해후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아는 사람들. 서로의 인간적 빈틈과 그 사랑스러움을 아는 사람들. 때론 영혼까지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 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뉘여도 괜찮은 사람들. 오랜 시간을 함께 나눈 사이에서만 가능한 편안함과 아늑함.
 
이 모든 것이 그때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소중한 것들은 이렇듯 늘 멀리 있어봐야 보인다.
 
 올여름은 어쩐 일인지 그리 많이 덥지 않아서도 좋았다. 솔솔 바람 부는 아침저녁에는 걷기에도 좋았고. 그렇게 매일매일을 아껴 고향의 사람들과 함께 보낸 한국에서의 휴가. 늘상 아이 위주로 스케줄을 짜다 보니 이동반경에 한계가 있고 내가 가고 싶던 곳을 맘껏 갈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가족들과 한 번이라도 더 밥을 먹었고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해주신 깻잎전과 생선구이, 텃밭에서 막 따온 풋고추를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시던 아빠.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꿀꺽꿀꺽 잘도 먹던 아이 모습에 웃음꽃을 피우시던 엄마. 아이도 모처럼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받으니 좋았나 보다. 여기저기 이동으로 피곤했을 텐데도 오랜만에 보는 가족들이 반가웠던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한옥 처가 밑 장독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붕 한옥의 처가와 무늬.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팥죽

 

 그렇게 한국에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아이는 할머니집 이모들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고기'라는 갈치구이를 연달아 대접받으며 행복해했고 그때마다 밥을 두 그릇씩 비우는 기특함으로 모두를 흡족하게 하였다. 조카들인 또래 사촌들과 한국어로 재잘거리며 놀 때에는 엄마인 내가 또 어찌나 흐뭇하던지.

  외국에 살아서 좋은 것은 이렇게 올 때마다 모두가 매우 반겨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분에 겨운 대접을 받아 본의 아니게 늘 모두에게 신세를 지고 만다. 일단 약속을 잡으면 자동차 픽업에 밥 사기 술 사기 아이 선물 챙겨주기 등등 언제나 풀코스로 대접받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못내 미안했다. 차라도 한 잔 사려하면 손사래를 치며 나중에 프랑스 놀러 가면 그때 사라는 친구들.


 고마운 친구들은 약속 전 언제나 내게 먹고 싶은 것을 물어봐주고 한 상 거하게 먹여준 다음 꼭 좋은 찻집을 데려가 준다. 생크림 케이크와 옛날 핕빙수 시원한 오미자차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동네 성북동을 두 번이나 갔다. 언제 와도 포근해지는 나의 동네. 혼자 산책을 하곤 했던 그 거리들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았다. 몽실몽실 피어나는 추억.


 오랜만에 홍대에도 갔다. 이십 대의 숱한 추억들이 묻어있는 거리들. 그림 그리는 친구를 만나며 '모처럼 좋은 곳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리고 쏙 맘에 드는 카페에 갔다. 생동하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만져졌다. 아이디어들이 톡톡 튀고 넘친다. 그때 같진 않지만 여전히 홍대다.


 마음먹고 하룻밤 자고 온 친구네에선 모처럼 술을 마셨다. 영화 하는 친구 부부와 오랜만에 옛이야기들 영화 이야기들로 이야기꽃이 피자 술맛이 발동하였다. 이렇게 '찰진 밤의 수다'가 얼마만이었던지. 역시나 어릴 적 술친구와는 농밀한 음주 수다가 살아있었다. 친구 어머님이 담그셨다는 목련 막걸리와 보리수 술이 많이 맛있긴 했지만.  


넓고 푸근한 엄마품 같은, 내가 사랑하는 지리산 능선
팥순이 나의 픽은 언제나 같다. 내사랑 팥빙수야 붕어빵아. 안녕.


 그리고 언제나 좋은 강화도 드라이브. 소중한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강화도 앞에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지. 해서 일부러 늘 찾아가서 본다. 그러면 친구는 언제나 강화도를 쭉 돌아주며 바닷바람을 쐬어주기에.


 내가 간 날은 강화도에서 가장 좋은 날 중 하나인 안개가 낀 날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갯벌과 갯벌에 난 함초들이 안개와 어우러져 마음을 적신 오후. 쌓였던 이야기들 사이로 아름답게 드리워진 풍경에 마음이 아려왔다. 무심해서 더 아름답고 언제나 더 멀리 나를 데려가는 곳. 강화도는 그 친구와의 시간을 닮기도 했다. 깔깔깔 웃을 줄만 알던 시절에 만나 이제는 술잔이 아닌 찻잔을 앞에 놓고 고요 속을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우리. 그 시간을 닮은 그곳을 친구와 또 함께 걸어서 좋았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내가 아이 덕분에 기꺼이 사람 구경하는 곳에도 많이 갔다. 호수나 바다에서만 수영해봤지 워터파크라는 걸 가본 적이 없던 아이를 위해 조카들과 우르르 워터파크에도 갔고, 조카 학교를 하루 빠지게 꼬신 다음 함께 키자니아도 데려갔다. 깨알 같은 시설들과 현란한 디스코 타임을 자랑하는 점핑파크를 보더니 프랑스보다 좋다며 신이 난 아이. '프랑스 촌년'인 아이는 그때마다 처음 보는 신세계에 눈이 휘둥그래 졌다.  


 노래방에도 처음 가본 아이. 방탄의 '작은 시'가 나오자 오마마 노래라며 신이 나서 또 하자고 몇 번을 조르던 아이는 마침 BTS 팬이던 사촌언니와 함께 BTS 노래를 실컷 부르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노래방을 나설 때 들려오던 아이와 작은조카의 콜라보레이션. "엄마마마- 아빠빠빠- 언니니니- 오빠빠빠- 할아버지지- 할머니니- 이모모모- 이모부부부- 너너너너- 나나나나-"

 이 사랑스러운 멜로디는 다음날까지도 돌아오는 날까지도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마도 아이에게는 그 좋아하는 인형뽑기보다 사촌동생과의 이 한 구절이 가장 큰 추억으로 기억되리라.


명절 기분 내보려 오랜만에 아이랑 만들어 먹은 만두
최근에 먹은 집밥, 노릇노릇 돼지갈비 흑미 채식 김밥


 추어탕을 끝내 못 먹은 게 아쉽지만 여름 별미들을 원 없이 먹었으니 괜찮다. 아빠의 풋고추와 깻잎전을 오징어튀김을 실컷 먹어 행복했다. 외할머니를 뵙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엄마와 함께 저녁을 차릴 수 있어 고마웠다. 많은 친구를 보진 못했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았으니 되었다.  


 이렇게 또 한국을 느끼고 한국을 맛보고 한국을 체험할 수 있어서, 아이에게 또다시 한국을 심어줄 수 있어서 감사했던 시간들. 그 마지막 밤이 흐른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집으로 간다.


안녕. 나의 고향.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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