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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힐데 Sep 08. 2022

다시 찾은 일상

2010년 이후 회사와 집 다음으로 가장 긴 시간을 보냈던 공간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다. 일터가 서울에 있을 때도, 지방으로 사무실을 옮긴 후에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살 때는 회사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어서 점심시간에 종종 들렸다. 집에서도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었기에 퇴근 이후나 주말에 꽤나 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서울에서 살 때는 아이들도 무척 어렸기에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세 아이들을 앞세워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하곤 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로 시작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 읽기로 도서관 여정을 마치는 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루틴이었다. 유학 준비를 할 때 무료로 나의 열공을 뒷받침해 주는 공간도 도서관이었다.




지방으로 삶터를 옮겼지만 운 좋게도 회사 바로 옆에 국립도서관이 있다. 게다가 도보로 5분도 채 안 걸리는 매우 가까운 거리다. 이 도서관은, 집에서도 빨리 걸으면 10분 남짓만에 도착할 수 있다. 지리적 접근성 덕분에 나는 이 도서관을 엄청 사랑했고, 꽤나 애용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1년 남짓 도서관 이용이 어려워지고, 안전진단 결과가 미흡해서 재보강 공사를 하느라 2년 반이 넘도록 이 도서관을 방문할 수 없었다.


도서관 하나 문 닫았을 뿐인데, 내 삶의 리추얼도 함께 무너졌다. 퇴근 후와 주말에 도서관 대신 나의 일상을  굳건하게 뒷받침해줄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봤다. 카페, 스터디 카페, 아파트 단지 안 독서실, 시립도서관 등. 어느 하나 이 도서관만큼 내 맘에 꼭 드는 곳이 없었다. 장소를 확정하지 못하니 일상도 마음 내키는 대로 흘러갔다. 단단하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내니 만족스러운 결실이 잘 맺히지 않았다.




드디어 도서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너무 기뻐서 점심시간에도 방문하고, 퇴근 후에도 찾았다. 점심시간에는 관심 있는 책을 찾기 위해, 퇴근 후에는 외국어 수업 전 1~2시간 예복습을 위해서였다. 재개관 소식이 아직 널리 홍보가 덜 된 건지, 추석 연휴를 앞둔 시기라서 인지 이용객이 거의 없다. 공간이 한적한 덕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상쾌하다는 느낌이다.


다음 주에는 짬 내서 점심시간에 그림 동아리방도 방문해볼 생각이다. 소묘를 1년 배우고, 아크릴화를 막 배우려던 차에 코로나로 인해 3년 가까이 동아리 활동을 하지 못했다. 혼자서라도 그림을 그려보겠노라고 아크릴화 도구를 잔뜩 사서 집에서도 홀로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혼자 하니 재미도 없고 끈기 있게 지속하는 게 어려워 포기했더랬다.


공간이 열리니 짜임새 있는 시간이 뒤따른다. 도서관에 이어 동아리방까지 문을 여니 삶이 농밀해졌다. 보다 다채로워진 일상의 시퀀스 덕에 금년 남은 100일 남짓, 제대로 영글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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