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3종이라는 체육종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이다. 철인 3종 도전기를 담은 이영미 님의 <마녀체력>을 읽은 후부터다. 하지만 운동과는 수시로 고강도 거리 두기를 하는 내가 철인 3종에 지속적인 눈길을 줬을 리 만무하다. 1.5km 수영 이후에 40km 자전거를 타고, 마지막으로 10km를 달리는 살인적인 일정이니.
블로그에 아래와 같이 리뷰를 남길 때만 해도 딸, 아들이 둥지를 떠나기 전에 자전거도 잘 타게 되어 자전거 도로를 씽씽 달려보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신체조건과 마음관리에 더할 나위 없이 관대해지고 있다. 발이 땅에서 뜨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있는 나를 억지로 스트레스 상황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이미 둥지를 떠난 지금은 아예 희망목록에서 과감히 지워버렸다.
하와이 여행에서 스노클링 경험이 강렬해 수영을 다시 한번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꿈을 꿨던 적도 있다. 하지만 몇 차례 시도만 하고 결국은 지금까지 무기한 보류다. 핑계는 단순하다. 수영 배우기 전에 수영복을 입을만한 "몸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년의 상징 '복부비만'이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수영 배우기라는 인생목표는 요원할 듯싶다.
철인 3종 홍보물을 처음 봤을 때, 참가자들이 일렬로 자리해서 날렵한 입수 자세를 선보이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아 경기 시작 시간인 오전 7시에 맞춰 나름 서둘렀지만 안타깝게도 놓쳤다. 견과류와 바나나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겨서 나가보니, 선발대는 이미 한참 수영을 하는 중이었고 초록 수모를 쓰고 올해 첫 출전하는 선수들의 차례였다. 출발은 삼삼오오 조를 이뤄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25분이 채 되기도 전에 수영을 마친 선수들이 바꿈터에서 슈트를 벗고 사이클용 복장으로 환복 하기 시작했다. 내 시선을 잡아 끈 분은 여성 1호로 바꿈터에 입장한 분. 철인 3종 참가자들의 배번호와 이름은 이미 대회 웹페이지에 공지가 되어 있다. 모든 참가자가 복부 언저리에 눈에 띄게 배번호를 부착하고 있고, 팔에도 배번호를 헤나로 새겼기에 배번호만 기억하면 인간승리 주역들의 스토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성 출전자 중 가장 먼저 수영을 마친 분은, 슈트를 벗고 강렬한 레드톤의 수영복 차림으로 사이클 경주를 시작했다. 여성 최종 우승자 분과는 다른 분이다. 수영선수로 소년체전에서 금메달도 획득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고 지금은 수영강사로 활동 중이시다. 이력을 보니 수영에서 대활약이 수긍이 간다.
400m 계영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들의 기록은 3분대다. 철인 3종 수영은 거리가 4배에 달하고 깔끔한 실내수영장이 아닌 수초와 불순물이 가득한 호수나 물살이 거센 바다에서 이뤄진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상위권을 기록한 이들의 기록은 20분대다. 수영 기록만 경이로운 게 아니다.
10km 달리기 세계 기록은 26분 대지만, 단축마라톤 입상자 기록을 보니 30분대이고 일반인은 30분 후반대와 40분 초반에서 우승 희비가 갈리는 듯하다. 달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수영을 30분 가까이하고, 뙤약볕 아래서 자전거를 1시간 내외로 타고 난 후에도 전문 러너처럼 기록을 내다니.
경기종목을 바꾸는 시간도 기록에 포함되기에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수영 후 자전거로 바꿀 때 신발 신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아예 자전거 페달에 신을 부착해 둔 이도 여럿 보았다. 페달을 격렬하게 밟게 되니 경기 도중에 신발 벨크로가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본 참가자들은 자전거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서 승차 상태에서 벨크로를 재부착했다. 마음 졸이는 건, 온전히 겁 많은 내 몫이다. 문득 몇 년 전 아이들과 즐겁게 본 <겁쟁이 페달>이 떠오른다.
이번 철인 3종 경기에서는 40대 참가자들의 투혼이 돋보였다. 전체 1위를 한 분도 40대였고, 여성 1위를 한 분도 40대였다. 전체 1위를 한 분의 기록은 2시간 4분 6초. 찾아보니 이 분은 <철인수업>이란 책도 출간하신 철인 3종 전문가시다. 조금 전에 바로 앞에서 얼굴 본 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연예인을 만나면 이런 느낌이려나.
여성 1위를 한 분의 경력도 화려하다. 작년 같은 곳에서 개최된 철인 3종 경기에서 여성 2위였다. 안타깝게 메달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13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마라톤 결승전에 참여했던 분과 이름이 같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분이라면 더더욱 대단하신 듯 싶다. 작년에 이 대회에서 여성 1위를 하신 분이 이번에는 여성 2위가 되었다. 넘사벽 1위보다는 이렇게 반전 드라마가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상황이, 늘 성장하게끔 부채질하는 원동력이 되는 듯싶다.
여성은 64세까지 참여했지만 남자 출전자 중에는 70대 이상도 무려 9명이나 있다. 선두권으로 결승라인을 통과하는 이들 중 꽤나 뒷번호가 보인다. 배번호가 뒤로 갈수록 고령층이다. 남편이 속한 50대 전반대 연령층 중 철인 3종 마니아도 계신다.
아래와 같이 블로그도 운영 중인데, 블로그명이 <또띠나>이다. 금년 4월 기준, 무려 철인 3종 240회 완주라는 어마어마한 경력 보유자인데, <내가 내 기록 깨기>라는 좌우명을 입증하듯 웬만한 철인 3종 경기에는 참여하는 듯하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매끄럽게 진행하는 노련한 MC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오디오 빌 새 없이 진행상황을 알려주고, 번호와 이름을 부르며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정말 프로다웠다. 평소에 출퇴근하며 늘 오가기에 익숙하고 식상하기도 했던 길이,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멋진 이들로 가득 차 역동적으로 변신한 걸 체험하는 것도 새로웠다.
마지막 참가자의 결승선 통과 순간까지 함께 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경기에 참여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참관만 했을 뿐인데도 기진맥진하게 되는데,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2시간 이상 여정을 소화한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에 도착하니 아직 채 10시도 안 됐다. 수박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소고기를 넉넉하게 구워서 두번째 아침 식사를 했다.
철인 3종은 절대 무리겠지만, 단백질 보충도 충분히 했으니 더 나이 들기 전에 10km 마라톤이라도 도전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