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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벽의 끝, 결혼 (11)

'Would you like to be my girlfriend?'

by 한나Kim

싱가포르에서 즐거웠던 몇 일간의 만남 후 그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그저 싱가포르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유쾌한 가이드’ 역할에만 충실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우울했던 순간 나타나, 다시 한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 주고 간 그에게 참 고마웠고, 또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가 독일에 도착한 후,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핸드폰이 아닌, 내 방에 있는 유선 전화기로 말이다. 들어는 봤는가 유선 전화기. 국제전화카드를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껏 통화를 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일명 집전화기.'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20분밖에 못쓰지만, 집전화로 하면 5시간은 거뜬히 이야기할 수 있었던, 그렇다. 그가 내 방 전화기로 연락을 한 것이다.


...


잠깐 TMI로, 내가 집 전화기로 요하네스랑 통화를 길게 하고 있을 때면, 하우스메이트였던 그레이스가 가끔, 우리 통화가 끝난 줄 알고, 전화기를 들어 다이얼을 눌렀다. 그럼 방에서 그녀에게 소리를 친다. "Sorry Grace, I'm still on the phone with him!" 그럼 화들짝 놀란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이야기한다. "Sorry!"


사실 집전화기 사용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 거 같은데, 이렇게나 추억이 될 일인가 싶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하루하루가 놀라울 지경이다. 정신줄을 똑바로 잡고 있어야 겠다.


...


"잘 도착했어."라는 말로 포문을 연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시답잖은 이야기였지만, 나름 즐거운 대화였다. 그렇게 한참을 통화하다가 그가 전화를 끊기 전에 뜬금없이 한마디를 했다.



"Would you like to be my girlfriend?"


헉 ㅇ_ㅇ



분명 나는 그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가 좋은 사람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마도 그는 나의 솔메이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말을 듣는 순간,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먼저, 나는 싱가포르에 있고, 그는 독일에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서로를 잘 알지 못했다. 게다가 나는 외동딸이기 때문에 반드시 한국에서 살아야 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의 여자 친구가 된다 한들 어찌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스위트한 제안을 들으면서 기쁘기보다는 무수히 많은 걱정이 멈춤 없이 떠올랐다.


반면, 이번 기회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포기를 해버린다면, 아마 35살이 되어서 훨씬 우울해질 것이다. 그때에는 얼마 전에 우울했던 것보다 한 50배는 더 우울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지금의 선택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Yes'라고 하는 것도 싫었다. 미래(?)가 달린 일인데 감정만으로 대답하는 가벼움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복잡하다ㅠ. 결국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의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If you want to go out with me, come to Singapore first. Then I'll think about it."



너무 나다운 답변이 아닌가. 가능성은 주면서, 위험부담은 가지지 않겠다는 철벽. 그가 나에게 진심이라면 싱가포르에 오려고 노력을 할 것이고, 아니라면 안 오겠지 하는 무모한 자신감. 지금 당장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그가 돌아선다면 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에는 안될 관계일 거라는 강단.


...


솔직히 그때 나는 누군가와 감정이 깊어지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누군가를 나보다 더 사랑하게 되어 나 자신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랄까. 더 솔직하게 말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헤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이것은 사실 아빠로 인해 생긴 것이다.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바람을 피웠다. 내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바람피우던 여자가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그 여자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후에도 아빠는 자주 바람을 피웠다. 그리고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엄마는 나에게 늘 이런 이야기하셨다.


"남자는 다 바람을 피워. 철수네 아빠도 바람을 피우고, 영희네 아빠도 바람을 피워. 우리 아빠만 피는 게 아니야. 남자는 다 그래."


사실 나의 엄마는 어린 딸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렸던 나는 그 말들을 심장 깊은 곳까지 꼭꼭 숨기며 남자에 대한 불신을 조금씩 키워나간 것이고.. 참 슬픈 일이다.


딸이 있는 아빠라면, 자신의 행동이 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행동이 아들의 인생관에 평생의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는 같은 성(性)을 가진 자식보다, 다른 성(性)을 가진 자식에게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슬픈 것은, 남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공포심이 있는 나였기에, 요하네스가 설령 나를 보기 위해 싱가포르에 온다고 한들, 의심이 끝나는 게 아니란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를 보러 온 순간부터가 '사랑과 불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ㅜ


이렇게 하다 보면 결국 이놈도 나를 떠날 테지. 이를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는 나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에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험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맙소사 ;;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요하네스 아니었으면 결혼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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