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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벽의 끝, 결혼 (10)

'영혼의 동반자는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임을.'

by 한나Kim

요하네스가 짐을 챙겨 출국 심사장에서 밖으로 나왔다. 2년 전의 모습과 변함없는, 밝고 온화한 그의 분위기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는 먼저 그의 호텔로 가서 짐을 풀고, 싱가포르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어디를 갔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딱 한 곳. 리틀 인디아에 갔던 것만은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떠오른 다.


몸이 녹아내릴 듯 더웠던 날이었다. 그 일대를 걷는 것만으로도 땀이 쏟아졌고, 너무 뜨거운 더위로 아스팔트 위가 이글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다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서로를 향한 '호감'이라는 마법 덕분인지 그 무더위 속에서도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보였다.


싱가포르의 리틀 인디아는 매력적인 곳이다. 정말 인도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가득 나는 곳. 그곳에 위치한 힌두사원도 리틀 인디아의 매력을 더한다. 상점 곳곳에서 파는 인도풍 옷과 액세서리도 아름다웠고, 곳곳에 즐비했던 인도 음식점, 그리고 어딜 가나 느껴지던 인도의 향식료 냄새까지. 존재 자체만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그와 함께 싱가포르에서 시간을 보냈을 때도 역시나 어색함이 전혀 없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오랜 친구 같은, 또는 이미 안지 몇십 년이 된 듯한 그런 편안함이 있었다.


나는 스몰토크에는 서툰 편이다. 반면, 인생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20대였을 때도 그랬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여 그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되었지만, 마냥 즐겁기만 했던 20대 초반부터 그랬으니,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사람인가.


또 이런 성향 때문인지, 20대가 되어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나의 본심을 드러내는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응을 해주는 편이었다. 그렇게, 눈치를 보는 우리 사회에 점점 더 길들여져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과연 어떤 모습이 나의 진짜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밖에서 보이는 내 모습과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의 괴리로 혼란스러웠던 날들이 꽤 있었다.


이랬던 나에게 거침없이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나의 꿈이 무엇인지, 인생이란 무엇인지, 나의 생각은 어떤지. 정말 숨김없이 말할 수 있는 상대. 그가 바로 요하네스였다. 희한하게 그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부끄럽지 않았다.


Soulmate라는 말이 있다. 영혼의 동반자. 솔직히 이전에는 솔메이트는 '언어'로 결정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어야 하니, 당연히 모국어로 얘기해야 잘 통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요하네스를 만나고 '영혼의 동반자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지, 언어로 맺어지는 게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


짧은 5일 동안 그와 싱가포르 곳곳을 누볐다. 클락키도 가고, 센토사 섬도 가고, 내가 살고 있던 Pasir Ris도 갔다. 그러다 그가 귀국을 해야 하는 날이 왔다. 만남이 있으면 늘 이별이 있는 법이니까. 이번에도 역시 담담하게 헤어져야지 싶다가도, 좋은 인연이랑 다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했다. 그렇다고 뭘 시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무리 아쉬워도 타고난 내 성향을 바꿀 수가 없으니..


그는 이번에도 역시, 짧고 굵은 만남을 남긴 채 떠났다. 슬프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또 다른 추억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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