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읽어야 비로소 모든 것이 연결된다.'
언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은 '스피킹'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말을 알아듣고 소통하는 것이 언어의 기본 과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참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방식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언어를 배우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고 또 즐거웠다. 때문에 회화야 말로 영어의 처음과 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 가치관이 깨진 순간이 있었으니,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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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회화실력'이 폭발적으로 는 것은 미국에서 근무를 했을 때다. 호텔 프런트에서 일을 하며 하루 종일 영어로 소통했고, 직장 동료이자 베프였던 Faith랑 한 집에서 살았기에 퇴근 후에도 그녀와 하루 종일 떠들었다. 그렇게 18개월 동안 영어만 썼으니 회화가 일취월장한 것은 솔직히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 근무를 마친 후에는 귀국하기보다는 해외근무를 더 해보고 싶어 무작정 싱가포르로 갔다. 싱가포르에 도착하자마자 일을 구하기 위해 헤드헌팅 회사에 면접을 보았는데, 그때 면접관 중 한 분이 "한나님은 이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입니다. 100% 붙을 거예요!"라고 말씀하시며 유명한 다국적 기업을 추천해 주셨다.
그녀가 확신했듯 내 이력서는 가볍게 통과됐고 인적성검사 날짜가 주어졌다. 인적성검사 테스트요? 수능 이후 영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는데 가능하려나??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시험에서 똑 떨어졌다ㅎㅎ
오로지 말로만 해온 영어의 한계가 그때 드러난 것이다. 솔직히 문제의 난이도를 떠나 독해 자체가 어렵게 느껴졌었다. 그러니 읽는 속도가 안 붙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뭐 총체적 난국이었음ㅋ
그해 12월, 요하네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독일의 유명한 어린이책을 영어원서로 보내줬다. 싱가포르에서는 친구도 없었고 무료하게 살던 때라 책을 받자마자 읽었는데, 초4~5 정도 레벨이었음에도 초반에는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약간 익숙해진 후부터는 거리낌 없이 읽히기 시작했다. 한 권을 읽고 나니, 두 번째 책은 더 쉬웠고, 세 번째 책은 한국책이랑 별반 다를 거 없이 생생하게 읽혔다.
그렇게 연거푸 3권의 영문책을 읽고 나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말하던 문장들이 뭔가 또렷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걸 조금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그동안 귀로 듣고 말로만 했던 영어가 이제야 비로소 연결이 되는 느낌이었달까. 마치 물 위에 떠다니던 문장들이 땅에 자리를 잡은 거 같은 느낌. 혹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언어가 하나로 연결된 느낌.
그때 나는 재밌게 책을 읽으면서도 영어가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덧붙여 아무리 말을 잘해도 읽기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알맹이 없는 모래성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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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가 화상영어를 하면 할수록 영어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남달랐기에 그제야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 많은 아이들이 같은 선생님께 수업을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같은 수업을 듣는 아이들임에도 누구는 영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반면 누구는 깊게 뿌리내리지 않고 지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반에는 아직 6개월이 안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아이들은 6개월이 지나도 비슷했다.
왜 그럴까? 무엇이 다를까 생각을 해보니, 두 부류의 아이들 사이에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둥이를 포함해서 영어를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은 집에서 꾸준히 영어책을 읽어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둥이는 Oxford Reading Tree를 읽었음
그걸 인식했을 때, 내가 인적성검사에서 떨어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 언어공부는 회화만으로는 부족했지. 읽기를 하면서 언어를 연결시키는 게 진짜 중요구나.'
그때부터 나는 조금 더 신경 써서 ORT를 읽어줬다. 영어실력이 팍팍 늘지 않는 아이의 엄마들에게는 영어책을 읽어주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걸 듣고도 안 읽어주는 사람들이 99%였음. 사실 영어책을 꾸준히 읽어주는 게 굉장히 귀찮은 일이긴 하다. 나도 쌍둥이가 아니었다면 안 했을 터. 두 명이니 이를 악물고 읽어줬음..;;
그렇다면 내가 둥이에게 5년간 꾸준히 읽혔던 ORT는 어떻게 읽어줘야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이 방법은 다음 회에 공개하겠다.
- To be continuted..
PS
둥이의 언어력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100일 때 이미 '엄마'라는 말을 했고, 7개월 때 물, 넨네(낮잠), 꼬꼬(공갈젖꼭지) 등 중요한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 돌 때부터는 문장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단어를 말할 수 있었으며, 24개월 때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갔을 때도 "햇님아 다 울었다. 이제 들어가자"라던가 "서연아 잠깐만 차 좀 마시고" 등 또래에 비해 말을 너무 잘한다며 선생님이 전화를 종종 거셨다.
왜 이렇게 말을 잘할까 생각해 보니,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독일어 학원을 열심히 다녔던 것이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싶다. 우리 조상들이 강조하던 태교의 효과랄까.
덧붙여 아이들이 5살 때 독일에서 잠시 살며 3개월 동안 유치원에 다녔는데, 그때 다중언어를 경험했던 점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