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 No도 못하는 바보가 나였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네팔로 해외봉사를 갔던 적이 있다. 이는 미국,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네팔, 일본 등에서 온 약 25명의 사람들과 2주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산속에 소방도로(fire road)를 만드는 봉사였다.
그곳에는 굉장히 아담하고 나보다 2살이 어렸던 금발의 독일 소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했다고 하면서 아침마다 사람들 앞에서 품새를 보여줬었다. '앞촤기~ 옆촤기~ 톨려촤기~'와 같은 너무나 외국인스러운 한국발음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태권도의 나라에서 와서 그랬는지, 그녀는 목욕을 하러 갈 때나 산에 오를 때, 밥을 먹을 때, 늘 내 옆에 있었다. 희한한 것은 그때 내가 영어를 정말 한 마디도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목욕을 하려면 샤워실이 따로 없었기에 강으로 가야 했다. 둘이서 강가까지 마치 절에서 묵언수행을 하듯 조용히 걸었기에 꽤 불편했을 법도 한데, 그녀는 늘 나와 함께였다. 게다가 강에서 얇은 원피스를 입고 목욕을 하는 나름 재미있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영어를 못하다 보니, 눈이 마주치면 그냥 히죽히죽 웃기만 했었다. 소통이 아예 불가!
그때 독일녀뿐 아니라 나한테 말을 걸던 60대 미국인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녀는 내가 대답을 안 하는데도 자꾸 말을 시켰다. 포기할 법도 하나 나중에는 "It's okay, you can tell me anything" 이러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물론 저도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지요. 그런데 두려움 때문에 말이 안 나오는걸 어찌합니까. 내가 말하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다 틀렸을 거라 생각하면 너무나 오싹한 걸요!
그렇게 2주를 살다 보니 끝에는 나 스스로한테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다. 그냥 아는 단어로 대충 말하면 되는데 나는 왜 이걸 못하나? 상대방 말을 대부분 알아듣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단어도 다 아는데 왜 나는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가.. ㅠ
그렇게 그곳에서 영어회화를 끝장나게 공부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만을 다진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그해 겨울, 혼자 사부작사부작 준비해서 고딩동창 2명을 데리고 가성비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필리핀 마닐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된다.
필리핀의 어학원은 정말 별세계였다. 퀄리티가 넘사벽으로 좋은 선생님들과 1대 1로 하루 4시간씩 수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학원에서 그렇게 4시간을 떠들고 집에 와서는 개인교사를 고용해 2시간을 더 배웠다. 그리고 내 선생님 중 한 명이 필리핀-캐나다 혼혈 남자분이셨는데, 밤에는 그분이 내가 살던 하숙집으로 매일 전화를 해줘서 1시간씩 전화로 또 떠들었었다.
그렇게 매일 7시간씩 영어로 말을 하면서 1주일이 지나자, 하고 싶은 말이 한국어에서 영어로 변환돼서 나오는 게 아닌, 그냥 영어로 바로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그 혼혈 선생님이 필리핀은 위험하니 조심히 다니라고 하길래 "My face is a weapon, so it is no problem (난 얼굴이 무기니까 괜찮아!)"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그때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내 머릿속으로 'weapon이란 단어가 떠오르네? 신기하다'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너무나 한국적인 표현이라 그가 처음에는 이해를 못 하긴 했다ㅋ
말로 배우니까 영어가 이렇게나 재미있구나를 깨달으며, 내가 처음부터 학원이 아닌 영어회화로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나는 정말로 영어를 잘했을 거 같은데 그리고 더 열심히 했을 거 같은데 하는 아쉬움도 함께 말이다. 덧붙여 그동안 내가 속았었구나 하는 배신감도 들었다.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시스템이 과거완료/현재완료/to부정사/동명사/관계대명사와 같은 공포를 이용해 나에게 영어라는 즐거움을 몰아냈었구나 하는 배신감이랄까.
그때 내가 21살 애송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네팔과 필리핀에서의 경험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게 늘 옳은 방법이 아닐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 그러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만의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내 미래의 아이를 절대로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을 거야. 차라리 그 학원비를 아껴서 방학마다 필리핀으로 데려와 회화를 배우게 해야지.'
다행히도 그 다짐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고,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둥이가 태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