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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Nov 30. 2023

파마를 하면서

10개월 만에 미용실에 갔다.

파마를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긴 머리를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파마를 하는 이유는 예뻐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다.

관리하기 가장 편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단발머리는 스타일링을 해주어야 하고, 긴 생머리 역시 스타일링을 해주지 않으면 뒤에서 보면 그냥 귀신처럼 보인다.(20대의 긴 머리와는 다르게 찰랑거림이 없기 때문일지도)



적당히 긴 머리에 파마를 해주면 말릴 때만 손가락으로 뒤로 꼬아주는 노력을 들이면 스타일링하기도 쉽고, 귀신처럼 보여 밤길을 다닐 때 누군가에게 공포심을 안겨줄 위험도 줄어든다.     

그런 이유로 일 년에 한번 많으면 두 번 정도 파마를 한다. (훌륭한 이유에 비해 횟수가 적은 걸지도) 

지난번 머리가 너무 긴 것 같아 커트했는데, 그러면서 파마기가 남아있던 부분이 대부분 잘려 나가서 점점 귀신과 가까운 머리 모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예약해둔 시간에 칼같이 맞춰서 미용실 문을 열었다. 원장님 한 분이 운영하는 곳이라 다른 손님도 없고, 시끌벅적하거나 요란한 서비스도 없다.

담백하게 손님을 맞는 원장님께 2년째 머리를 맡기고 있다.

메고 간 가방은 대기석 의자에 내려놓고 외투는 벗어드렸더니 보관함에 넣어주셨다. 가운을 입고 세 자리 중 가운데 자리에 앉으라는 말씀에 가운데 자리로 갔다.



발 받침대를 잘못 밟아 의자가 쓰러지려는 걸 간신히 붙들어 세우며 조용했던 미용실에 한차례 쿠당탕 소음을 만들어냈다. 손님이 왔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 요란스럽게.     

네이버로 예약하며 펌을 선택했기에 원장님은 내가 파마하러 왔다는 걸 이미 알고 계신다. 


“어떤 스타일로 해드릴까요?”


전날 검색으로 찾아놓은 이미지를 보여드린다. 


“갈수록 오른쪽 이마가 점점 휑해져서요. 사이드뱅(앞머리를 턱선 정도로 길게 내고 컬을 만들어 양옆으로 넘기는 스타일)을 해서 휑한 곳을 가리고 싶어요. 그리고 층을 좀 많이 내서 컬이 크게 많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나의 자세한 요구사항에 머리를 전체적으로 꼼꼼히 살펴보신 원장님은 


“층은 이미 많이 나 있으니까 끝만 조금 다듬고 앞머리를 좀 낼게요.” 


라며 머리카락 다듬을 준비를 하셨다.

약 1~2cm씩 잘라내고 층을 조금 더 내고, 사이드뱅을 위해 옆머리를 끌어와 앞머리를 만들었다. 좀 더 풍성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옆머리가 너무 적어서 어색해질 거라고 하셨다. 원래 이마 윗부분 머리카락이 제일 가늘게 나고 잘 빠진다고 하시며 휑해지려는 내 이마 라인이 부끄러워지지 않을 위로의 말씀까지 아끼지 않으셨다.     



머리를 다듬고 나서 전체적으로 파마약을 발랐다. 약을 바르고 머리에 랩을 씌운 후 10분 동안 열을 가한 후, 열을 식히며 또 10분을 기다렸다. 그 후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살펴본다. 머리카락을 살짝 당겨도 보고 구부려도 보며 관찰하듯 자세히 보는 원장님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그렇게 보시면 뭐가 보여요? 머리카락이 달라져 있어요?”

“네, 그럼요. 약을 바르고 나면 머리카락이 파마하기에 적당한 구조로 바뀌어 있어요.”

“정말요? 진짜 신기하네요. 그게 눈에 보이는 것도 신기하고요.”

“아, 테스트해 보는 방법이 있어요. 그리고 이 과정이 제일 중요해요. 이 과정에서 머릿결이 80% 이상 상하기도 하거든요.”

“열을 가할 때 상하는 게 아니고요?”

“열을 가할 때 상하는 건 10~20% 정도예요. 그래서 약 처리할 때 진짜 잘해야 해요.”

“와, 완전히 새로운 정보네요. 처음 듣는 얘기에요.”     



초등학생일 때부터 파마했으니 파마 경력만 40년 가까이 되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처음 열 파마라는 걸 하면서 단순히 열을 가하기 때문에 머릿결이 많이 상하는 거라고, 그래서 열 파마를 하면 꼭 영양제를 넣거나 좋은 파마약을 써야 하는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열을 가할 때 10~20%의 손상이 생기기 때문에 영향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머릿결 손상은 약과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 시간과 더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테스트한 원장님은 5분만 더 있다가 헹구자고 하셨다. 정확히 5분 후 파마약을 헹구고 나서 본격적으로 열 파마를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헤어롤에 말아 문어발처럼 생긴 열 파마 기구에 연결하고 또 20분가량 외계인이 된 것 같은 모습으로 버티고 나면 그 과정이 끝이 난다. 나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맘에 든다. 내가 평소에 그렇게 우스꽝스러워질 기회가 잘 없기 때문인지, 곧이어 예쁘게 꼬부라든 머리카락을 보게 될 기대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 모습을 조금 즐긴다.     



중화제를 바르는데 바나나 우유 향이 났다. 예전에는 파마약 냄새가 머리에 오래 남아서, 나 파마한 지 얼마 안 됐어. 라며 광고라도 하고 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 약은 냄새도 좋다. 그 냄새 역시 파마약이라는 정체성을 크게 벗어나긴 힘들지만 그래도 꽤 달달한 냄새가 나서 기분이 좋아지니 역시 기술의 발전은 이래저래 좋은 법이다.     

완성된 머리는 마음에 쏙 들었다. 사이드뱅으로 휑했던 오른쪽 이마도 제법 가려지고, 컬도 지난번보다 훨씬 더 탱글탱글하게 나왔다.


“고객님 파마를 세 번째 하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잘 나오는지 알겠어요.”



아…. 그런 거였구나. 아무리 전문가여도 한 번에 척 가장 좋은 방법을 알아채고 적용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앞의 두 번은 제법 마음에 들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굵기와 탱글함에 아주 살짝 모자랐던 것이었다. 한 사람의 머리를 컷트도 해보고, 파마도 해보면서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하면 원하는 대로 예쁘게 해줄 수 있을지 나름의 정보가 쌓인 것이다.     



완벽함이란 것이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서두를 때가 많다. 두 시간에 걸쳐 완성되는 파마를 하는데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과정 과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약을 발라서 머리카락의 구조를 바꾸는 것부터 결과물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에 앞의 단계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그 과정을 잘 넘기면 남은 20%의 손상도와 적당한 컬을 결정지을 열처리 과정이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열기구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에 한 번 더 중화제를 바르고 롤을 감아 머리카락이 중화되는 동안에도 컬이 유지되게 해주는 정성까지 더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샴푸로 깨끗이 씻어준다. 마지막으로 드라이기로 말려주며 고객이 원했던 스타일을 만들어주며 두 시간의 인내심이 열매를 맺는다. 



마치 과정은 생략된 것 같은 모습으로 거울을 보고 앉아 있지만, 미용사는 하나하나의 과정에 신중과 정성이라는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동안 쌓인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최적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 시간짜리를 한 시간으로 압축해서는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지름길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최선의 길이라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용실을 나서며 생각해본다. 

나는 원하는 모습을 위해 하나하나의 과정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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