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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May 30. 2024

2. '좋다'와 '괜찮다'의 사이

 튀르키예라는 여행지를 과감하게 선택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상은 이렇다.



 튀르키예 패키지를 검색했다. 

 H투어, M투어, 여행 XX, 박사님 투어, 색깔풍선 등등. 대표적인 몇몇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을 검색한 결과 가격이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행 일정은 대동소이했다. 다만 거기에 국내선 항공이 포함되는지, 옵션으로 포함된 관광이 몇 번인지, 호텔이 몇 등급인지, 쇼핑이 몇 회인지에 따라서(이건 적을수록 가격이 높다) 조금씩(이라고 하기엔 백만 원 이상 차이나는 상품도 있긴 했다) 차이가 난다.


 

 대충 유명하다는 여행지가 포함된 패키지 상품을 선택한 뒤, 추가하고 싶은 선택 관광을 추린 다음 인원수대로 곱하여 총 예상 비용을 계산해 보았다.(한 문장으로 줄인 이 짓을 장장 3박 4일 동안 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에 머리가 띵해진 순간. 과연 튀르키예가 옳은 선택인지 다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맞벌이라고 하기엔 내가 띄엄띄엄 용돈 수준의 돈을 벌고 있는 우리 집 형편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며 여행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짓인가 싶었다. 한편으론 이토록 범람하는 패키지 상품과 여행 후기에 나 하나 슬쩍 숟가락 얹는 게 뭐 대수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가 줄어든 통장 잔고에, 칼같이 떼가는 카드 결제대금을 보고 있으면 속이 쓰릴지 흐뭇해질지 안 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누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했던가. 아등바등 가계부를 쓰는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결국 갈대는 ‘올해는 그냥 저렴한 비용으로 다녀올 수 있는 동남아시아로 짧게 다녀오고,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유럽이든 미국이든 가자’로 기울어졌다. 그 여유란 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말이다. 








 그러다 문득 어떤 책을 보다가(어떤 책이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원하던 여행지를 갈 수는 있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며, 그때의 우리 아이도 지금의 우리 아이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중에 다시 와서 밤의 알람브라 궁전을 꼭 봐야지, 하는 초등학생 같은 다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여행에서 두 번 다시란 없으니까. 다시 왔을 때 나는 그때의 그 사람이 아닐 테니까.




 나의 고민에 김연수 작가님이 쐐기를 박아주셨다. 

 그는 스페인 그라나다에 머무는 동안 알람브라 궁전이 야간 개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다. 그리고 스페인을 떠나는 날 그곳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고 해도 그곳에서 하지 못한 것에 미련 두지 않고 아쉬움 없이 돌아서는 것이 여행이라는 사실 역시 그가 얻어 온 여행지에서의 깨달음이다.



 지금이 아니면 이번에 했어야 하는 경험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12살 14살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40대 중반의 튀르키예 여행은 두 번 다시없으니까. 언젠가 가게 되더라도 그때의 나와 아이들은 지금의 우리가 아닐 테니까.     



 아이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그리고 우리 집 경제 사정은 그리 넉넉지는 않아.(이건 무슨 잔인한 조건인가) 동남아시아로 가고 싶어, 그럼에도 튀르키예를 가고 싶어?” 

 (내가 진짜 이렇게 답정너 같은 질문을 했다.)

 



평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도 좋은 첫째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튀르키예를 가면 좋겠지만, 동남아시아를 가도 괜찮아”     


 ‘좋다’와 ‘괜찮아’ 사이의 그 멀고도 먼 거리. 그걸 알아차릴 눈치는 평소 “괜찮아”를 남발하는 아이의 입에서 “좋다”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자동으로 작동했다.



 그래, 지금의 우리가 경험하는 튀르키예는 어떨지 가보자. 

 통장 잔고나 카드 결제대금 등 닥쳐올 일은 지나가고 생각하자. 

 내일 일은 내일의 내가 해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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