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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Jun 22. 2024

8. 이코노미석을 버티는 방법


 김연수 작가처럼 기내에서 읽고 쓰겠노라 다짐하며 야심 차게 챙긴 책(자신만만하게 두꺼운 책을 챙기는 대담함이란)과 노트북은 내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역할만 하고 말았다. 




 기내식을 먹기 전까지는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는 얘기는 앞에서 했고.

 기내식을 만족스레 먹고 나니 기내 전체에 불이 꺼졌다. 독서 등을 켜 보았다. 내 자리가 안쪽부터 세 번째 자리인 통로 쪽이어서 불을 켜면 옆자리 뒷자리까지 불빛이 번져 나갔다. 자고 있는 다른 분들께도 민폐, 아이들이 보고 있는 작은 모니터도 불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독서를 포기하고 선택한 영화 바비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였다. 하지만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인간의 본성을 논한다는 점에서 교집합이 존재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만약에?라는 질문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영화였다. 

  

  만약에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한다면?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안전한 공간이 된다면? 

  12시간이 아니라 12일을 비행해야 하는데 음식이 떨어진다면? 

  연료가 떨어진다면? 

  이 비행기 안에서 어떤 폭력적인 사건이 발생한다면? 

  환자가 발생한다면? 




 인간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에 만약에? 는 실제가 될 수도, 가까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만약에’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상황 가운데 던져진 나는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 상상해 보는 일은 꽤 흥미로우면서도 아득해지는 일이었다. 동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현재를 감사하기로 했다. 인간성 소멸의 현장을 두 눈으로 보고 온몸으로 겪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잠시 기도했다.




  뮤지컬 「컴프롬어웨이」는 미국의 911 테러 당시 뉴욕공항으로 착륙할 수 없었던 비행기가 캐나다의 한 작은 도시에 불시착하면서 일어난 이야기다.  작은 마을이어서 그런 걸까? 실화라고 알려진 이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넘치는 인류애를 통해서 인생과 인간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훈훈한 온정을 나눠줄 수 있는 인간이길 바라게 되었건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그런 온정은 극한까지 가지 않았을 때만 존재하는 것일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유쾌하지 않은 영화를 보고 나니 두통이 시작되었다. 

 생각이 많은 탓이었을까. 다행히 두통은 예고 없이 시작될 때가 잦아 가장 자주 드는 가방에 진통제를 넣어왔다. 진통제를 먹고 30분쯤 지나니 통증이 가라앉았다. 이 경험 덕분에 돌아올 때는 우울할 것 같은 영화는 아예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돌아올 때는 너무나 유명해서 안 본 사람이 없지만 나 혼자 여태 못 본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골랐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많이 본 문장이지만 패키지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나서 더 특별했던 ‘인생이 서투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해요’라는 문장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이래서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고 하는 것인가.








 책을 읽지 못한 아쉬움으로 요리조리 몸을 틀다가 대각선 앞자리에 앉은 분을 보게 되었다.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는 모습에 나도 휴대폰에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문득 밀리의 서재가 생각났다. 다행히 저장되어 있는 책이 세 권 있어서 그중 여행 에세이 책을 골랐다.




 유럽 자유여행 경험을 담은 책이었다. 자유여행 고생담은 패키지여행의 편안함과는 분명 거리가 있을 테다. 그러나 패키지여행이라고 해서 마냥 편하기만 하지는 않다. 아들 둘을 데리고 떠난 가족 여행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면 아들 둘을 챙겨야 하는 엄마의 복장은 젊고 고운 그녀들처럼 샤랄라 할 수가 없다는 것. 낯선 풍경이 주는 감동보다 스마트폰 게임이 두 아들에겐 여행이 주는 크나큰 기쁨이라는 것. 그러나 깊은 빡침따위 즐거운 여행을 위해 평보소다 깊은 인내심과 넓은 아량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 등.




 한자리에 묶여 꼼짝 못 하는 공간이 주는 이점도 나름 존재했다. 평소 집중력과 인내심이 짧고도 얕은 둘째가 두 시간 반짜리 영화 두 편을 내리 봐버렸다는 사실이다. 한 편을 보고 나서 게임을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2편을 보는 치밀한 전략을 세우는 노련함까지 보여 감탄했다. 그런가 하면 평소에는 일단 손에 든 책은 마지막 장을 봐야 내려놓는 첫째는 영화 중간에 재미없다며 꺼버렸다. 중간에 그만두는 단호한 결단력을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아이였는데, 이 역시 아이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재미없으면 꺼야지. 그럴 수 있지. 12시간 내내 비행 정보를 업데이트해 주는 모니터만 흥미롭게 보는 아이가 나 역시 몹시 흥미롭긴 마찬가지였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다가 목청껏 우는 어린아이를 봤다. 얼마나 지루하고 불편할까 싶어 우는 아이도, 그 부모도 안쓰러웠다.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땐 그런 불편함과 고생스러움이 감당이 안될 것 같아 장거리 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다 첫째가 일곱 살 둘째가 다섯 살 무렵 첫 비행기 여행을 했다. 멀지 않은 제주도로. 둘째는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할 때 귀가 아프다고 울었었는데 기압차이 때문에 아직 어린아이들은 귀가 아플 수도 있다는 걸 그땐 몰라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가족을 보면 용기에 놀라게 되고 아이가 어린데 어찌 저리 노련할까 신기한 마음이 들곤 했다. 이제 제법 커서 여행을 위해 힘든 시간도 스스로 견뎌내려고 노력하는 내 아이들이 대견해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 좌석과의 거리가 평균 31인치, 약 78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코노미석에서 12시간을 버텼으니 아이들보다 우선 내가 죽을 지경이었다. 이코노미석을 지혜롭게 버티는 방법? 그런 건 없다. 그냥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아픈 무릎과 허리, 지루함을 잊어야 한다. 그쪽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지루한 일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법이 어디 있던가. 그저 노동요를 틀어놓고 묵묵히 하는 수밖에 없다. 최대한 내 흥을 돋울 수 있는 90년대 댄스곡을 고르고, 리듬에 몸을 실어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주변에 나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줄 모든 상황과 환경을 최대한 이용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허락하면서.




 12시간을 버티고 나니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착륙을 준비했다. 지루함에 하얗게 질려가던 아이들의 혈색이 흥분으로 발갛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만 미터 상공에 동동 떠 있던 발이 지상을 향하니 심신에 안정감이 깃들 수밖에.




 여러 번의 귀 먹먹함의 순간을 침 삼키기와 하품하기로 해결하고 나니 멀리 한눈에 보이던 튀르키예 땅이 자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퀴가 땅에 닿으며 거칠게 흔들리던 기체가 안정을 찾고도 한참을 달린 후에야 움직임이 멈추었다 남한 면적의 세 배 가량 크다는 튀르키예의 드넓은 땅덩이를 여행하기 전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웰컴 투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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