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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Jun 18. 2024

7. 특별한 준비물이 남긴 교훈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 발해먹.

 기내에서와 튀르키예 내에서 이동할 때 타는 버스 안에서 쓰려고 준비한 발해먹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두 발을 다 올리면 가운데로 발이 몰려서 양 발이 서로를 너무 밀어댔다. 또 폭이 좁아 모서리에 걸친 부분은 시간이 지나니 점점 아파왔다. 한쪽 발만 올리고 있다 보면 불균형 때문에 또 불편해져서 결국 두 발 다 내리고 말았다. 어쩌면 다리를 쭉 뻗을 수 없는 좁은 공간이라 더 불편했는지도 모르지만, 넓은 공간이었다면 애초에 발해먹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겠지. 이왕 준비한 거 야무지게 활용해 주리라 다짐하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편해지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에어 목베개

 에어 목베개는 바람을 뺀 채로 가져갈 수 있어서 부피가 크지 않아서 좋았다. 영화를 볼 때도 목을 좀 더 편하게 기댈 수 있었다. 목베개에 바람을 넣을 때 너무 빵빵하게 넣으면 베개가 목을 밀어내는 느낌이라 피곤해진다. 그래서 적당히 바람을 빼줘야 한다. 너무 힘주어 강하게 밀어붙이면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게 되는 관계와 닮았다. 

 문제는 목베개를 준비할 새도 없이 잠이 들거나, 졸린 상태에서는 가방에 있는 그걸 꺼내는 것도 귀찮을 때가 많았다는 점이다. 목베개의 편안함을 누리려면 그것이 언제나 내 목에 딱 붙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웠는데, 이건 어떤 목베개여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안대

기내에서 잠잘 때 쓰려고 준비한 안대는 표면의 부드러움이 숙면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잠깐 자는 동안 편하게 푹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새로움 때문에 잠깐 좋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이후에 한 번 더 시도해 보았으나 잠잘 때 뭔가가 내 얼굴을 덮고 있으니 어쩐지 숨이 막히는 기분이어서 하지 않게 되었다.



#귀마개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장만한 도구 중 하나인 귀마개는 여행 때는 거의 필요가 없었다. 함께 방을 쓴 둘째가 코를 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쭉 매우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집에서는 둘째가 아닌 다른 이와 한 방을 쓰는데, 이미 16년째 밤잠을 설치면서도 왜 한 번도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의아할 정도다.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해도 1/3만 차단해도 이리 편히 잘 수 있는 것을. 매일 밤 잠들기 전 애착인형처럼 더듬더듬 귀마개를 찾아 귀에 꽂고 나면 들숨날숨이 마치 백색소음처럼 내 귓속에서 울리면서 수면을 유도하고 편히 잠들게 된다. 백색소음이 없어도 잘 자는 사람이긴 하지만 코 고는 소리에 깨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매우 만족해하는 중이다. 이런 게 바로 천 원의 행복이 아닐는지.



#접이식 전기포트

 접이식 전기포트는 대부분의 여행후기에서 언급되고 있었다.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라면을 끓여 먹거나 햇반을 데워 먹을 때 유용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현지 음식에 대한 우려는 딱히 없었다. 대신 아침마다 커피를 마셔야 하는 습관이 있어서 물을 꼭 끓여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내 여행이나 해외여행에서 나는 단 한 번도 호텔 커피포트에 대한 찝찝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논리적인 주장에 설득된 사람처럼 '그렇지 찝찝하지. 그리고 컵라면을 먹으려면 있어야지' 라며 당연한 듯 접이식 포트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게다가 착착 접혀 납작해지는 그 최신의 기술을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도 아쉬웠다. 

 여행 내내 아침마다 커피를 위해 열일해 준 커피포트에 무한 감사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호텔에서 라면도 햇반도 먹지 않았으므로 딱 커피를 위해서만 필요한 최신기술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터질 것 같은 캐리어에 납작하게 접혀 자리를 덜 차지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굳이 없어도 될뻔한 작고 동그란 물건의 존재감이라도 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해야 할지 애매모호한 물건이다. 하지만 또다시 해외여행을 계획하게 된다면 찾게 되겠지.



#가습마스크

 가습마스크는 내게 가장 필요한 물건 같았다. 몸속 수분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건조함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후기에 의하면 가습마스크를 하고 있으면 기내에서도 호텔에서 잠을 잘 때도 가습기가 없어도 촉촉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나만 촉촉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인원수대로 넉넉하게 준비해 갔다. 

 외관은 일반 마스크와 같지만 내부에는 작은 포켓이 있어서 거즈면에 물을 적셔서 넣는다. 적셔진 거즈면의 물기가 숨 쉴 때마다 호흡기를 촉촉하게 유지시켜 주는 원리다. 그 물은 내가 직접 넣어줘야 한다. 그 점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식사 때 받은 물을 두었다가 거즈면에 부어 적셨다. 붓는 과정에서 옷에도 흘리고 다소 번거롭긴 했지만, 건조한 호흡기와 피부를 적당한 습도로 유지시켜 준다는 기대감으로 탈탈 털면 그만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잠을 청해보았다. 신기하게도 건조함이 덜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호흡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데다 의도적으로 숨을 쉬려니 한층 불편하게 느껴졌다. 결국 잠결에 나도 모르게 빼버렸다. 호텔에서는? 꺼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우리 집 마스크 보관함에 고이 모셔졌는데, 언젠가 또 필요한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리 가까운 시일 내에 꺼낼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준비물은 매우 유용했고, 어떤 준비물은 괜히 샀다 싶었다. 발해먹의 경우 그나마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산 물건이라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불편하다고 버리진 않을 테니 환경오염에 일조하진 않았다며 다소나마 위안을 삼았다. 또 언젠가 장거리 여행할 일이 생기면 또다시 꺼내서 시도해 볼 것이다. 그땐 내 발에도 살이 좀 빠져서 덜 힘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가보지 않은 곳, 경험하지 않은 미래는 불안감이라는 감정과 동반한다. 불안하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하려고 하는 것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것저것 캐리어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렇게 가져가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없다. 집 떠난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고자 한 번이라도 꺼내서 사용해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편하면 다시 캐리어 구석자리행이지만. 꼭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이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내 인생 캐리어에 집어넣어 두면 언젠가 어떻게든 써먹는 날이 온다. 그리고 사소한 경험을 적재적소에 써먹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아마 이 짜릿함에 중독되면 자꾸만 캐리어를 채우고 싶어 안달이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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