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날개 옆은 하늘이 온전히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감으로 자리를 고른 나는 하필 날개 정중앙 자리를 골라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자리를 잡고 10분쯤 지나자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륙 지점까지 서서히 움직이는 비행기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탈 것이 된다.
마치 빨리 날아오르고 싶은 내 맘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비행기를 뒤에서 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으니 나는 이 시간에 주로 존다.
날아오르기 전 끝없이 걷고 달리는 순간은 언제나 지루한 법이니까. 깜빡 졸고 있는데 둘째 아이가 "엄마 이륙한대"라고 하며 내 손을 잡았다.
눈을 떠 비행기가 무거운 공기를 업고 날아오르는 순간의 짜릿함을 만끽한다.
비행기의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땅에서 짊어지고 있던 짐들과도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앞으로 11시간의 비행을 앞두고 있지만 누구 하나 지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윈 하지 않는다.
만약 지상에서 누군가 나를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화장실 갈 자유와 작은 모니터 하나만 허락한 채 세끼 밥만 챙겨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한 마리의 미친개가 되어 싸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행기는 내게 '11시간만 그 상태로 참으면 새로운 세계에 내려줄게.' 라며 철석같이 약속했기에 참을 수, 아니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륙을 끝낸 비행기가 평행을 되찾고 직선 비행에 들어가자 새벽 4시에 일어난 여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중력이 약한 9천 미터 상공에서도 잠은 눈을 무겁게 누르고, 편하게 자겠다며 야심 차게 준비해 간 에어 목베개를 꺼낼 생각도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단잠에 빠져있어도 예민한 청각과 후각은 기내식이 다가오고 있음을 간파하고 눈을 뜨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트가 세 줄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사전조사를 통해 불고기 쌈밥이 훌륭하다는 정보를 입수했기에 흔들리지 않고 쌈밥을 주문했다. 아이들은 둘 다 치킨 데리야끼를 선택했는데 굳이 말리진 않았다. 다행히 둘 다 인생 첫 기내식이 만족스러웠던 듯하다.
9천 미터 상공에서 먹는 음식 이어서일까. 다소 심심한 간의 불고기였고,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쌈밥이었는데, 그걸 먹은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도 치킨데리야끼에 함께 나온 모닝롤과 케이크까지 야무지게 먹고. 작은 모니터에 소박하게 탑재된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동안 나는 내 비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줄 영화를 고르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인 시공간에 어울릴 법한 영화 "바비"를 골랐다.
완벽한 핑크색 바비랜드에 사는 바비들은 매일매일이 최고의 날이다. 바비는 뭐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 옆에 언제나 존재하는 켄은 그저 켄일 뿐이다. 바비와 한 세트가 되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어떤 목적도 역할도 없다. 그저 바비를 사랑하고 바비에게 사랑받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어느 날 현실세계와의 균열을 통해 점차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게 된 바비가 만들어진 삶이 아닌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아간다는 이야기다. 바비의 여정에 동행했던 켄은 바비가 봐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닌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한 인간의 성장 서사를 갖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중간중간 식곤증으로 졸면서 본 덕분에 이야기가 이상하게 점프하곤 했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와 영화를 찾아서 한 번 더 보고 난 후에야 괜찮은 영화를 고른 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행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보기에 더없이 완벽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빈틈없이 완벽한 삶에서는 진정한 자아가 고개를 들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삶이 가진 힘만으로도 굴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생기고, 완벽하게 구워지던 토스트가 새까맣게 타고, 완벽했던 까치발이 땅에 닿는 등 삶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비로소 진짜 나를 찾게 된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일상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 그 사이에 작게 균열을 만들어 내면 빈틈이 생긴다. 그 빈틈으로 누군가의 일상적인 공간에 나의 비일상을 집어넣어 그 사이를 활보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의 책임과 의무를 잠시나마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비일상의 시공간에서 나의 본성에 가까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게임에 지친 아이들도 각자가 고른 영화를 보면서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갔다. 앞줄에 앉은 남편은 맥주와 영화를 즐기며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