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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May 21. 2021

해봐야 되는 사람

비록 돌아가더라도,



주변에선 요즘엔 의사들 수술도 잘하고 선택제왕하면 아프지도 않고 좋은데 뭐하러 자연분만 하려하냐고 말하곤 했는데 이상하게 자연분만이 하고 싶었다.
음식 가려먹여야지, 가슴 모양 망가지지, 분유 먹어도 다 잘 크잖아~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 모유수유가 하고 싶었다. 또 도마며 칼이며 아가용으로 다 새로 장만하고 야채 고기 잘게 다져 거름망에 걸러내주고 그렇게 직접 이유식도 해먹여보고 싶었다.
어떤 방식으로 기르든 다 무방하다 생각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이 그랬다. 몸에 칼 대는 것도 싫고 또 그냥 자연스럽게 최대한 내가 직접 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싶은 것이 내 취향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제왕절개로 아가를 낳았고, 현재 분유를 먹이고 있으며 이유식은 시판을 사먹이고 있다.

40주가 지나도 아가가 안 나와 유도분만 시도 후 3~4시간 정도 진통을 겪다 "아 저 그냥 수술해주세요!"하고 외친 나. 열몇시간씩 진통을 견디는 엄마들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난 못 견딜 것 같았다. 허리가 휘다 꼭 꺾일 것만 같았고 그냥 다른 비유도 모르겠고 내겐 그저 못 견디겠는 고통이었다.

병원, 조리원에서부터 모유수유에 대한 열정을 비장하게 품고 수유콜 부르면 네!하고 달려가고 방안에선 열심히 유축도 해보았지만 양은 또 왜이리 안 느는지. 젖이 넘쳐 젖병도 모잘라 모유저장팩에까지 넣는 엄마들도 있는 반면 나의 모유는 20~30ml을 웃돌기 일쑤였다. 이상하게 양이 많은 엄마들 젖병은 모유냉장고에 이름이 잘 보이게 늘 앞에 있었고 나를 비롯한 양이 적은 엄마들 껀 늘 뒤쪽에 있었던 웃픈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뭐라고 당당하게 앞에 두질 못했는지.
아무튼 집에 와서도 포기 않고 비록 분유와 혼합이었지만 꾸준히 먹이려 노력했는데 왜 나는 수유를 하면 어깨도 무릎도 왼쪽 손목도 그렇게 아플까. '눕수'라도 해볼래라는 언니의 조언에 누워서도 먹이고, 무릎 안 눌리게 책상 위에 애기 눕혀 먹이는 시도까지. 모유가 적으면 애기가 짜증을 낼 법도 한데 30분이고 한시간이고 끈덕지게 무는 아가와 나의 이상하게 포기 안되는 마음이 한쌍을 이뤄 여차저차 120일까지는 모유를 먹였다. 그치만 120일 간 그냥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느낌.. 이걸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내 몸에서 내가 만든 영양분을 직접 먹이고 싶은 맘, 젖먹는 모습이 너무 예뻐 쉽게 놓지 못하는 맘, 그런 맘들 때문에 포기가 잘 안되었다. 그러다 치과 치료를 한동안 받을 일이 있어 항생제 든 약을 먹느라 일주일 정도 수유를 못했고, 치료 끝나고 다시 모유수유를 하는데 아가가 그때부터 잘 먹질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단유'가 되었다. 몸은 힘들고 주고는 싶고.. 그렇게도 고민이 됐었는데 끊고 나니 참나, 고민했던 게 무색할만큼 너무 편했다..! 이렇게 좋네..?

이유식도 냄비, 도마, 거름망 다 사 초기미음은 열심히 만들어보았다. 야채만 들어갈 때는 할만했는데, 소고기 들어갈 때부터는 모유수유때만큼 깊은 고민 않고 그냥 사먹이기로 결정했다. 코딱지만큼 들어가는 고기 넣으려 매번 조금씩 고기사는 일, 아니면 넉넉히 사놓고 소분해 냉동실에 두었다 조리하는 일, 거기다 애기꺼라 유기농으로 또 해주고픈 맘.. 비용, 품, 시간.. 다 따져보니 그냥 사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힘든데 고기육수내고 다지고.. 이유식까지 만들 여유는 지금은 없었다.


조리원 동기 중엔 병원에서 초유만 먹이고 바로 '완분'을 선택하는 엄마, 이유식도 고민않고 바로 사먹이는 엄마, 만들어 먹여도 야채를 직접 사 조리하는 것이 아닌 가루로 나와있는 제품을 그냥 쌀가루랑 끓여 주는 엄마 등등 간단하고 수월하게 가는 엄마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연분만도, 모유수유도, 이유식 만들어 먹이기도 제대로 못했다. 이럴거면 다른 엄마들처럼 처음부터 맘편하게 그냥 쉽게 쉽게 갔으면 될걸, 그럼 진통도 안 겪어도 되고 몸도 안 상하고 또 도마니 냄비니 돈도 덜 썼을수도 있는데.

그런데 어쩌나.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걸.. 해보고 싶은 건 맛이라도 봐야 후회가 없는 사람. 그래서 출산 후 이것저것 시도했던 일들, 후회는 없다. 육아뿐만 아니었다. 내 인생은 쉽게 갈 것도 잘 돌아가고 안해도 될 것도 해보게 되고.. 대체적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후회 없다. 경험은 인생에 미련을 남기지 않는 내가 아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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