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소심해지고 조급해진다. 어떻게든 시야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옹졸해지기 쉽다. 몸의 에너지가 줄어드니 행동반경과 관심사도 줄어든다. 체력이 달리니 몸으로 움직이는 시간보다 머리로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식견이 좁아지고 아집만 는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어떻게든 늙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외모 관리에 돈을 쓰고, 네트워크 등에 신경을 쓴다. “난 아직 젊어!”라고 대놓고 애쓰는 것부터가 실은 나이 들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과거에 나를 거쳐 간 취미 생활과 동호회를 떠올려보았다. 직장생활을 할 땐 사진동호회와 산악회 활동을 했고, 자동차동호회에 가입해 새탈(새벽탈출이라고 해서 저녁에 모여 강릉, 양평 등으로 그룹드라이브를 하고 돌아오는 것)을 종종 했다.
방송작가가 된 후로는 PD, 작가, 연예인, 성우 등이 인맥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엔 아이 친구의 부모, 학부형들과도 교류를 해오고 있다. 40대 중반 독서치유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직종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했고, 글쓰기 강사를 하면서 수강생으로 온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 경험들이 세상을 바라보는데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빠와 시아버지의 노년을 떠올려보면, 바깥 활동도 드물게 하셨지만, TV나 신문을 보며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아빠는 종종 모임에도 나갔지만, 뇌졸중 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했던 시아버지는 식사하실 때 빼고는 방안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자식들이 “노인정도 가고, 산책도 좀 하세요.”라고 말해도 변화는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바깥 활동을 줄이고, 새로운 인연과의 교류도 꺼리는 눈치다. 그러다 보면 자기 세계에 갇히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뉴스를 통해서만 접하게 된다. 그렇게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세대와 소통하지 못한 노인은 꽉 막힌 꼰대가 되기 쉽다.
40대 이후가 될수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새로 시도하는 일을 늘리는 것이 현명하다. 옹색해지지 않기 위해, 지금 현재의 나를 수용하기 위해, 사색에 잠기기보다 행동을 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공부를 더하고 싶고, 악기도 배우고 싶다. 춤도 잘 추고 싶지만 그쪽으론 적성과 취미가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아버려서인지 선뜻 도전은 못하고 있다.
나는 노인들이 조금 더 설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노인들의 모습이 TV를 통해서 보여져야 하고, 나이를 잣대로 도전이나 행동에 제약을 줘서도 안 된다. “노인네가 왜 돌아다녀?”, “곱게 늙지. 추하다.”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사회는 활기차고 멋진 노인을 만나기 어려워진다.
아기로 태어나서 나이가 들고, 죽지 않는 사람은 없는데, 늙었다고 지레 겁먹고 집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산 송장처럼 늙어가고 싶지 않다. 다행인 것은 최근 유튜브가 일반화되면서 나이 든 유튜버와 실버모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노년의 롤모델이 다양해지는 것은 그 뒤를 이어갈 중년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