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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체린 작가의 작업에 대한 비평문

by 형신

약간의 우울감은 모든 이가 가지고 살아가는 감정이라고 했던가. 모두가 크고 작은 우울감을 가지고도 일상을 버텨낸다는 사실은 내 주변을 지탱하는 이들에게 경외를 갖게 한다. 불안 또한 우울과 맞닿아 있는 감정으로, 우울과 불안은 서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불안은 보편적인 감정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체린 작가는 주변의 풍경을 돌아보는 데서 작업을 시작한다. 사소해 보이는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보인다. 최근 작업은 작가가 사는 근방의 아파트 단지가 리모델링 된 사건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집 주변의 탄천을 오가는 왜가리, 백로, 오리와 같은 새들을 관찰해 왔다. 그리고 새들이 낮에는 탄천에 머무르지만, 밤에는 아파트 단지 근방의 나무에 지은 둥지로 돌아간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단지가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서면서 단지를 가리던 울창한 나무들이 잘려 나가게 된다. 작가는 하루아침에 사라진 둥지와 살풍경한 풍경에서 불안을 느꼈고, 금이 간 낡은 아파트의 모습으로부터 다시금 사라진 새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뻗어 올라간 나무와 새 둥지, 금이 간 아파트의 모습이 공존하는 하나의 풍경을 만들었다.


작가의 불안은 가장 편안한 듯 보이는 집이라는 공간이 사실은 불안정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새가 둥지를 튼 나무를 베어낸 일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욕심의 기저에는 안정된 생활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하면, 타자의 일상을 침범한다면 욕망은 온전히 충족되는가.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불안은 나무를 베듯 깔끔하게 삭제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금이 간 아파트에 덕지덕지 바른 페인트처럼 껄끄럽게 남아 우리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체린 작가는 사건의 관찰에서 시작해 내밀하고 개인적인 행위를 탐구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내게 불안할 때마다 상한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과일 껍질을 길게 깎아낸다고 말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서로를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와 불안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작업실 테이블에는 작가가 나에게 주기 위해 깎아놓은 과일이 통 안에 말끔히 담겨 있다. 그는 이것을 깎으면서도 불안을 떠올렸을까. 작가의 감정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과일은 감사하게도 내 앞에 있다. 이체린 작가는 불안이 극복해야 할 심리적 결핍이 아니라 살아있기에 느끼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깐의 안정을 찾는 소소한 행위가 단지 자위적인 행위가 아니라 감정을 인정하는 과정이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발판이 되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작가의 소소한 행위는 내 앞에 놓인 과일처럼, 타인을 생각하는 무언가로 변모하기도 한다.


상한 머리를 자르고 과일을 깎듯, 이체린 작가는 광목천에 물감을 먹이고, 다시금 닦아내는 방식으로 화면을 만들어 간다. 그를 통해 빛바랜 듯한 그림이 만들어지며,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이 섬세한 톤과 더불어 드러난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본 풍경들과 내면의 심상을 조합해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지난한 삶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에는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다만 심리학적 접근이 해결의 전부가 될 수 없듯, 작가의 태도 또한 불안에 대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접근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에 그의 작업을 바라보면서 잠시의 위안을 얻기보다 다음 단계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Peel, Peel, Peel>

이체린 개인전 @cheeee.che

일정: 2025.12.03-12.07

10:00-18:00

장소: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제2전시실

주최/주관: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평론: 윤형신 @gudtls2178

촬영: 뤼미에르아트랩


이 글은 이체린 작가를 위해 쓰인 비평문입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인용 시에는 출처 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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