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중인 여행자
떠나는 아침은 분주하다. 씻는 걸 마치고 세면도구를 챙겨야 하고 옷이나 신발을 놓고 가는 것이 없는지 옷장도 한두 번 다시 확인해 봐야 한다. 영국 조식이 꽤 마음에 들었던 엄마는 이 호텔 조식을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나는 조식 포함 비용이 비싸서 파리에서는 조식 포함으로 예약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서 먹지 않을지도 모르고 이래저래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직원에게 물어보긴 했었다. 하루 전에 미리 말하면 준비할 수 있다고 직원이 안내해 줬었다. 그런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져온 물건도 챙겨서 가방에 넣어야 했고 파리로 가지고 왔던 환상도 수거해야 했다. 우리는 괜히 오랑주리 미술관이 정말 좋다던데 아쉽다는 말을 했다.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아쉬움도 모두 챙기고 침대에 앉았다. 이용했던 객실의 창 밖은 기대했던 모습이었다. 객실 화장실도 괜찮았고 슈퍼마켓이나 아침 산책로도 이만하면 좋았다. 엄마는 오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밖을 봤다.
나도 가만히 엄마가 보고 있는 밖을 봤다. " 오랑주리 미술관은 다음에 오면 되니까. "라고 말했고 이번에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엄마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호텔의 조식을 먹어볼걸 조금 후회했다. 나는 관광지의 풍경을 위주로 찍었었다. 내 모습과 풍경을 같이 찍는 일은 드물었다. 다시 파리에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나와는 다른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피사로 가는 비행기를 오를리 공항에서 타려고 예약했다.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었다. 다시 시작된 이동에 조금씩 예민해지고 있었다. 반면에 아쉬움이 가득했던 엄마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음 나라를 갈 생각에 기분이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를리 버스를 타기 위해서 Denfert-Rochereau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버를 이용할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해 보는 것이 핵심이었다.(제정적으로 최대한 조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를리 버스가 저렴한 편입니다.)
숙소에서 오를리 공항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고 무난하게 도착했다. 덕분에 공항에서 시간이 좀 남았었다. 폴 빵집도 작은 팝업처럼 열려 있었고, 라 뒤레 마카롱도 공항 안에서 살 수 있었다. 배고팠던 모양이었던 우리는 폴 빵집에서 빵을 샀고 라뒤레 마카롱도 작은 통으로 샀다. 우리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마카롱 3개 정도만 남기고 다 먹었다. 배가 불렀던 나는 노곤했다. 엄마는 여유롭게 이어폰을 꺼내더니 노래를 들었다. (이미 영국에서 스트리밍이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있었던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스마트폰에는 몇 개의 음원이 있었다.)
이지젯 비행기는 정말 작았다. 작은 것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타는 것 같았다. 좌석에 앉아보니 엄마는 아니지만 나는 무릎이 앞 좌석에 닿을 것 같았다. 키가 저렇게 큰 사람들도 다 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지젯을 타면서 나는 기내용 캐리어와 배낭을 선택했던 것이 탁월했다고 생각했다. 내 좌석 위쪽에 캐리어와 배낭이 각각 들어있었고 수화물을 찾지 않고 바로 피사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데 부담감이 줄어들었다.(작은 항공사에서 종종 수화물 분실 사건이 일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해에 유럽여행을 갔고 작은 항공사를 이용했던 제 주변 사람들 중에 누구도 수화물을 분실하진 않았습니다.)
3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 창문 쪽에 어린 학생이 탔고 우린 통로 쪽에 타 있었다. "엄마 비행시간이 두 시간 정도밖에 안되긴 하는데 화장실 가려면 통로 쪽을 앉을래요?"라고 내가 물었다. "이미 화장실 다녀왔어 난 괜찮을 것 같아."라고 엄마가 대답했다. 승무원이 산소 호흡기를 입에 가져 대면서 빠르게 안내를 하고 비행기가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 비행기에 꿀렁 거림이 기억나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 손을 꼭 잡았다. 비행기는 알곡 지게 상승기류를 탔고 금방 안정권으로 들어왔다. 안 무서운 척했던 엄마는 금방 잠에 들었다.
이제야 여정의 반을 마친 우리는 체력을 낭비하지 않는 법, 24시간 붙어있어도 자기 시간을 지키는 법, 둘 사이에 새로운 룰을 만들어서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다른 마음으로 피렌체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