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오진우가 뒤척이다 가 잠에서 깬다. 한증막을 두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 서서히 땀이 나서 흐를 때 허리를 굽히고 작은 철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면 뜨거운 땀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오진우는 허리를 펴고 밖으로 나와서 털석 앉았다. 복도 반대 구석자리에 앉아서 낮게 달린 창을 한 참 봤던 것 같다고 오진우가 느낀다. 뜨겁게 젖은 머리가 식어가고 머릿속에서 질문은 사라지고 주변에 아이랑 놀러 온 엄마들이 돌아갈 때까지 흔들리는 나무를 보았던 것 까지 기억이 난다. 생각이 멈추자 잠이 왔고 옆에 목베개 하나를 집어서 누웠던 것으로 잠이 시작되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깬 새벽은 춥고 어둡다. 오진우는 높은 천장에 나무와 황토 그리고 갓처럼 생긴 조명을 보고 있다. 눈을 깜박거리면서 도대체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다시 생각한다. 피로가 밀려온다. 따뜻한 바닥과는 다르게 윗 공기는 조금 차갑다. 일어나 어딜 가야 할까 아님 다시 눈을 감을까 생각한다. 작은 파동일 일어나는 것처럼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퍼진다.
눈을 뜨니 주변은 새벽과는 다른 분위기다. 마음속도 다른 생각이 들어찬다. 오진우는 시원하고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 진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생각난 국물에 집중하면서 몸을 씻는다. 계산을 마치고 기분이 좋아지는 차갑고 맑은 공기 속으로 들어간다. 손에는 스트로가 꼽혀있는 단지 우유가 있다. 홀에는 재잘거리는 손자와 할머니가 앉아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손자와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머니를 지나쳐 주차장으로 향한다. 오진우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먹는 것에 흥미를 잃은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골똘하게 식사에 대해서 고민하다 적당한 곳을 찾았다. 빨간 입간판이 높게 있는 짬뽕을 파는 가게다. 가게 이름은 다른 중국집과 비슷하지 않다. 원래 짬뽕이 자신 있는 사람처럼 사람 이름과 잠뽕을 넣어 이름을 지었다. 상가가 밀집해 있는 곳이 아니라 국도 변에 3개의 식당이 모여 있는 곳 중에 하나다. 사람들은 이미 많이 있다. ‘저희 가게는 브레이크 타임이 없습니다.’라고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식당은 단연 맛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다. 후회 없는 식사로 에너지가 보중 된다.
오진우는 조용히 걷기 위해서 지역 8 경이라는 호수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호수를 끼고 바깥은 차도가 있고 안 쪽은 산책길이 있다. 산책길은 구불구불하게 호수 안쪽 지형에 맞게 놓여있다. 초입에 비린 냄새가 조금 올라오는 것을 오진우가 느낀다. 발 아래쪽에 물이 잔잔하게 움직인다. 반짝거리는 물의 파형이 호수 표면을 덮고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오진우가 잠시 멈춰 선다.
그럼에도 최 대표는 버티라고 말했었다. 김 대표가 말하는 것들보다는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퇴사하라고 말한 것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최 대표 말처럼 홧김에 한 말인지 사실 두 가지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팀장도 같은 말을 했었다. 홧김에 한 말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말라고 아무 일 없이 넘어가면 지나갈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과는 정중하게 해야 했는데 어떤 일을 사과해야 하는지를 오진우는 몰랐다. ‘대표님 두 분께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밖에는 더 구체적인 단어를 쓰지 못했다. 오진우는 계속 그것이 궁금했다. 버티라는 당신들의 성화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납득될 수 있다면 그곳에 남아 있고 싶었다. 그런데 속해 있던 세계에서 멀어질수록 무엇에 질문을 갖고 있는지 흐려졌다. 스스로의 생각들과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생각밖에 답이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오진우는 느꼈다.
오진우는 호수를 등지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도로가 보이지 않는 반대편까지 산책길이 이어졌다. 퇴직 몇 개월 전 성과가 나지 않는 업무가 가중되었다. 두 대표들은 초조함을 직원들의 업무 과중으로 위로를 받는 듯했고, 오진우는 주말에도 출근을 했다. 그러던 중에 최 대표는 한 가지 일을 더 시켰고 오진우는 그것을 거절했다. 주말 출근까지 하고 있는데 회사를 위해서 새로운 교육을 받으라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 이유였다. 그 자리에서 최 대표는 아주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회사의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 말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사람이 되는 거야! 오진우는 순간 팀장의 얼굴을 봤다. 팀장은 작게 고개를 흔들었고 갑자기 혼이 나가는 것 같이 오진우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죄송합니다.’라고 여러 번 말했다. 오진우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주말출근을 강요하는 것에 그럴 수 없다 말한 것이 어떤 일들을 초래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오진우는 대표실로 불려 갔고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모르지만 회사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오진우와 친한 동료는 잘못 들을 것 아니냐며 물었고 다른 후배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뒤로 혼이 나간 오진우를 김 팀장은 타일렀고 가장 친한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만두라고 말했었다. 그럼에도 마음을 돌려 두 대표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것은 부족한 것은 오진우 자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툭툭 소리가 난다. 나뭇잎을 스치고 땅으로 비가 떨어진다. 둔덕에 나무가 많아서 어두워진 것이 아니었다. 오진우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날씨 앱을 켠다. 앱에는 강수확률이 3시간 전에 70%이고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비는 오진우에게 떨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향하는 표지판은 있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표시된 산책길 지도는 없다. 돌아가야 할지 아님 더 걸어가서 길을 찾을지 결정해야 한다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어쩐지 산책길에 사람들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이 든 게 떠오른다. 입을 비죽 거리면서 척척한 땅을 걸어 나간다. 호수도 보이지 않고 오진우의 양쪽 어깨가 젖기 시작한다. 신발을 하나 더 갖고 오는 건데. 오진우가 나지막하게 혼자말을 한다. 오진우의 걸음이 느려지고 있을 때 호수 초입을 지나서 들어왔던 나무 바닥 산책길이 오진우 눈에 보인다. 이제야 한 숨을 내뱉는다. 몸이 긴장으로 놀라 있다가 이내 풀어진다. 호수 표면에 솔입 같은 작은 막대 비가 떨어진다. 뒤 쪽 나무에서 투두둑 떨어지는 빗소리 앞으로 일제히 호수에 얇은 막대가 쏟아지는 것을 오진우가 보고 있다. 순간이 멈춘 것 같다.
노란 등산복 차림에 아줌마 두 분이 종종걸음으로 오진우 앞을 지나 뛰어간다. 한 분이 확실히 더 빠르다. 속도 차이는 점점 나고 있다. 오진우도 그 뒤를 따라서 뛰기 시작한다. 몇 개의 벤치를 지나서 나무판 바닥을 지나고 치적 거리는 땅에 닿고 곧 주차장이 보인다. 언제까지 내릴 것 같던 비가 그친다. 비가 온 중간에 오래 서 있었다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차에 멍하게 앉아 있던 오진우가 늦기 전에 다음 행선지를 찾아보려고 조수석 시트에 벗어 놓은 옷을 들춰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회사 동기에게 부재중 전화가 걸려 있다.
세 번째야.
비가 와서 못 들었어.
비 안 왔잖아? ... 아직 안 돌아왔구나.
여기도 잠깐 왔다가 지금은 그쳤어. 급한 일이야?
네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그때 김 대표가 대표실로 부른 날에 감시했던 사람처럼 너한테 말했다고. 그제 협력업체들 전화 끝나고 사무실에서 좀 늦게 나가는데. 인턴 컴퓨터에 대표들하고 갠톡 하는 창을 봤어. 너무 놀래서 다시 확인했는데 맞더라.
오진우는 동기의 전화가 반갑지 않아서 건성으로 대답한다. 응?
우리 클라이언트 관련 일터 져서 주말 출근하고 야근 많이 했던 주중에 인턴이 늦게 까지 남아 있었잖아. 저녁 안 먹고 정리하고 간다더니 우리가 시킨 떡볶이랑 튀김이랑 지가 젤 많이 먹었던 날.
야, 인턴 키가 있는데 그 정도는 먹어야지.
그날 네가 팀장님 편을 들었어. ‘주말까지 톡방에서 저격해서 대표가 경위서 쓰라 뭐라 그러는 건 아랫사람 보기에도 좋지 않다고’ 그랬는데 그날 인턴이 튀김을 먹으면서 그 말을 들었던 게 기억나.
내 말을 김 대표한테 전했다는 거야?
거의. 김 팀장님한테도 말해 봤는데 반응이 이상해. 놀라서 더 물을 줄 알았는데 모른 척 하래.
비가 더 왔으면 좋겠는데 해가 나온다. 오진우는 동료의 말을 더 생각하지 않고 기어를 바꾼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호수의 바깥쪽 도로로 들어선다. 오진우는 멀리 가지 못하고 호수 반대편에 차를 세운다. 처음 호수에 도착했을 때보다 표면은 더 잔잔하다.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 같은 분노로 피로가 쌓인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한 것 때문에 이런 일들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오진우는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자책감이 든다. 그 사실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기대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더 가까워졌다고 오진우는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