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마신 라테

강원도

by 오주황



오진우는 주변에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숙소 침대에서 SNS를 뒤적거리다 한 시간 거리에 웨이팅이 아주 길었다는 커피집을 찾았다. 운전을 좀 해야 하지만 가보기로 한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카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흐린 날에도 사람들은 많다. 주차장도 마땅치 않은 작고 낮은 커피집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바닷가 뷰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주차가 편한 것도 아니고 테이블 간격이 넓어서 여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오진우는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여기에만 유독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은 좀 의아하다.

사람들은 거의 같은 메뉴를 시킨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은 뒤에서 회색 내용물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여러 개 옮긴다.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오진우가 무감하게 본다. 나이 든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보면 가족이 운영하는 커피집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주문하는 줄도 꽤나 길어서 벌써 지치려고 한다. 그것보다 주문받는 사람이 더 지쳐 보였다. 아직 정오가 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았을 때지만 이미 기력을 소진한 표정이다. SNS에서 봤던 메뉴로 오진우도 주문을 한다. 직원은 다시 한번 확인한다. 한 잔 이시라고요? 결제를 마친 오진우에게 직원은 영수증을 주면서 빨간 색연필로 숫자를 적는다. 30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카페 문을 열고 나온다.


카페 안에도 사람은 많고 카페 밖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오진우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으로 걸어가려고 지도 앱을 켜면서 카페를 나온다. 카페에 방문한 세 명의 친구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걸어가는 길에 사람은 거의 없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한 분 봤고 고장 난 것 같은 자전거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 마당이 보이게 문을 열어놓은 집도 있었고 지붕과 벽을 모두 파랗게 색칠한 집은 비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카페 주변을 제외하고는 모두 멈춰있는 것 같았다. 기념관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진우는 멀리서 높이 올라간 소나무를 보면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갑자기 든다. 길을 건너면 기념관인데 오진우는 뒤로 돌아서 다시 쓰러져 가는 카페 앞으로 돌아와 라테를 기다린다.


오진우는 자신의 속도를 찾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발이 이끄는 대로 걸을 것이지만 멈춰있는 길을 걷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스스로 각인시키고 싶었다.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앉을 것 같았으므로 어쩌면 맛있는 라테가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기다리는 줄 아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떤 표정이 있을까. 오늘 혼자 카페에 오는 사람은 오진우 하나인 것 같다. 주말에는 2시간 웨이팅도 했다는 사람의 SNS를 봐서 그런지 30분은 괜찮은 편이지 생각했지만 커피 한 잔을 위해서 주문한 후에 다시 30분을 기다린다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다. 마시고 싶은 것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 즐겁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한 번 소용돌이친 감정이 돌아오는데 시간이 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요리를 하다 썩은 양파를 보았을 때, 오진우는 그것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도려내도 되는 정도의 양파를 버릴 때도 있다. 여지를 남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썩은 부분이 오진우의 것일 때 문제는 시작되었다. 직면한 사실들을 받아들이면서, 부정적인 부분이 자신의 일부인 것을 알았을 때 오진우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순간에 피로해졌고 눈을 감고 싶었다. 아무것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싶었다. 인식한 이후부터 썩은 부분은 계속 오진우를 따라다녔다. 오진우는 도려내야 할 부분을 찾았지만 도려낼 수 없었다. 버릴 수도 없었다. 이 일은 요리하다 썩은 양파를 골라내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야 했고 그러면서도 솔직하고 눈을 떼면 안 되었다.


톨 사이즈만큼이나 작은 라테가 손에 쥐어졌다. 오진우는 일 분 전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곧 바닥이 꺼질 것 같은 기분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가 이제는 손에 든 차가운 음료가 궁금하다. 자동차를 향해 걷는 동안 한 잔을 다 마셨다. 자극적인 맛은 아니었지만 이전까지 먹었던 라테의 고소한 맛과는 달랐다. 새로운 맛이었지만 익숙한 부분이 있는 잔잔한 고소함과 적당한 밀도가 끌어당겼다. 오진우는 웃음이 났다. 마음속으로 복잡한 생각에 지쳐 있었는데 한 순간 달라지는 것이 놀라웠다. 퇴사한 후 삼일이 지난 오후에 얼마나 다양한 마음이 생기는지 그 전에는 알지 못했었다. 단숨에 마신 라테는 모든 생각을 정지시키고 맛있다는 즐거운 기분을 남겼다. 만드는 사람의 고단함도 보았고 기다리는 마음도 기쁘지 않았지만 맛있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단순해지는 것이 좋았다. 직원이 한 잔 이냐고 물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오진우는 생각했다. 두 잔을 먹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비로소 혼자 있어도 음식의 맛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많은 것에 마침표를 찍은 후에 오진우는 먹는 것에 맛을 느끼지 못했다. 가졌었던 인생은 사라졌다고 오진우는 생각했다. 깨진 상자 안에서 깨진 걸 모른 척하고 살지 아니면 다른 상자를 만들지는 스스로에 선택에 달린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사람들은 계속 오진우에게 물었다. 지원한 곳이 있는지 아님 준비 중인 것인지 궁금해했다. 오진우와 같은 프로젝트에 속해 있었던 외부인사도 몇 번은 물었다. 클라이언트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오진우는 더 이상 관계 맺지 않을 몇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많은 사람의 수발과 그 수발이 갑인 사람들이 밥을 먹고 술을 먹었다. 술을 따르는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과 그의 수발이다. 오진우는 받고 마시며 세상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이틀 뒤면 회사를 나가지만 클라이언트 앞에서는 술을 받으며 인사했다. 오진우는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같은 프로젝트에 속해 있지만 다른 팀의 장이었던 강 팀장은 같은 팀의 후배를 클라이언트와 가깝게 앉게 했다. 강 팀장은 직속 후배에게 먼저 잔을 받게 하고 오진우가 그것을 본다. 본인은 술은 못하는 편이라 잘 마시는 후배 덕좀 본다는 그는 웃으면서 후배에게 논개라고 말했다. 오진우는 팀장에게 지연 씨가 논개가 아니라 팀장님이 지연 씨를 뒤에서 민 것 아니냐고 되받았다. 오진우는 선을 넘었다. 그러나 그는 팀장이라는 이유로 여러 번 선을 넘었었다.

말을 들었는지 옆에서 윤 실장이 강 팀장 편을 든다. 대뜸 갑질이 없이 살고 싶다면 똑같은 돈을 받는 사람이 되면 된다고 말한다. 현실적인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일들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잔에 술을 채운다. 윤 실장은 선을 넘은 오진우에게 보란 듯이 말했다.

윤 실장은 클라이언트의 수발로 회의에 참석한다. 회의록이나 다른 자료들을 취합해서 보기도 하고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회사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에 그는 최 대표의 친구로 회사에 방문했다. 첫인상은 어울이지 않은 것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슈트를 갖춰 입은 그 사람은 생각보다 영민했다. 진행방향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지는 것 같으면 여과 없이 회의를 멈추고 쉬는 시간을 제안하곤 했다.


오진우는 강원도에서 벗어나서 점차 아래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내려가는 길에 유명한 소떡소떡을 먹으러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알감자와 핫바를 파는 작은 가게 중에 소떡소떡을 파는 곳은 두 곳이나 되었다. 외부 복도를 두고 두 상점은 몇 걸음 안 두고 붙어있었다. 머스터드, 케첩 그리고 고추장이 놓여있다. 아크릴 박스 박스 뒤에 소시지와 떡이 겹치게 꽂힌 꼬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튀기고 또다시 튀겨도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줄이 더 짧은 쪽에 선다. 오진우는 점원에게 아크릴 박스 뒤를 가리키며 말한다. 소떡소떡 하나요. 영수증이 나오기도 전에 점원이 하나를 꺼내 준다.


퇴직 전 이직 준비 중이라는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지만 오진우는 새로운 직장을 머릿속에 넣고 싶지 않았다.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오진우가 계획을 갖고 있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다른 계획이라면 오진우가 속했던 곳에서 최대한 멀어져 보자는 것이었다. 알고 있는 것들을 기반으로 두고는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 오진우의 직감이었다. 다른 정보들이 필요했는데 지금 상태로는 어떤 것도 왜곡되게 인식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퇴사 직전까지 오진우는 먹는 것도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진우는 살던 세상과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입맛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관계와 자극적인 사건에 갇혀서 그 일을 되짚어보느라 다른 감각들이 사라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퇴사 여행은 자연스럽게 먹는 것과 관계되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더 아래쪽으로 내려갈 것인지 이 도시에 들어가 볼까 잠깐 고민하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간다. 숙소는 마땅치가 않다. 사람들은 가족단위로 글램핑이나 펜션을 이용하는 것 같다.


찜질방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넓고 무엇보다 주말이 아니라 조용하다. 다른 지역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방문한다는 후기가 정말인 모양이었다. 찜질방 구운 계란을 깨면서 윤 실장이 돈에 대해 말했던 것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식혜로 계란을 밀어 넣고 있을 때 팀장에게 전화가 온다. 한 때는 회사에 의지할 사람은 팀장뿐이었는데 생각한다. 잠깐 마음이 약해진다. 피했던 전화를 받는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전화기 확인할 일이 없어요.

잘 지내고 있어?

그냥, 그래요.

내 친구가 사람 좀 소개해달라고 해서. 이력서 보내 달래. 주소 보낼게 그쪽으로 보내면 돼.

팀장님, 저 당분간 일할 생각 없어요.

거기서도 내부적으로 회의 중이라서 당장 출근하지는 않을 거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그래. 너도 아는 회사잖아. 넣어봐.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했지만, 오진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일을 배울 때부터 사수로 팀장은 오진우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야근하면서 같이 저녁을 먹는 시간에는 회사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는 했다. 나눈 것들은 티를 냈다. 팀장의 무능도 안타까워 보일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에 그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오진우의 잘못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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