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해변 쪽으로 가지 않고 차 안으로 들어와 의자를 밀고 시트를 뒤로 기울인다. 오진우는 바다 위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무들 사이로 하늘과 바다가 보인다. 조용한 차 안에서 본 하늘은 무표정한 것 같다. 눈을 감으려다 다시 시트를 올린다. 강원도까지 왔지만 회사에서 기억은 끊임없이 재생된다. 퇴사 요청 이후에 공동대표인 김 대표와 최 대표는 오진우를 회의실로 따로 불렀다. 최 대표와 오진우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고 뒤 따라서 김 대표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회의실로 들어왔다. 다른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최 대표는 만년필을 양 끝을 손으로 잡고 돌리면서 김 대표가 앉기를 기다렸다. 먼저 야기를 시작한 것은 최 대표였다.
계약 관련된 일로 미팅을 잡았습니다. 연봉협상 시기도 돌아오고 해서 계약을 다시 하려고 합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존대하는 최 대표를 감정 없이 오진우가 보고 있었다.
……
재계약하는 동시에 3개월간 수습기간 계약서를 쓰려고 합니다.
계약서를 2개를 쓴다는 말씀이신가요. 오진우는 놀란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대답했다.
불만족스러우면 고민해 보셔도 됩니다.
아무 말도 없던 김 대표는 의자에 일어나기 전에 한 마디를 했다. ‘ 나는 다른 회사에 보내려고 했는데 최 대표가 말려서 이렇게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거니까. 생각 잘해봐.’ 이상한 일에 연속이었다.
김 대표의 독단적인 퇴사 요구 다음날 팀장은 오진우를 근처 카페로 불렀다. 팀장은 김 대표의 의사에 따르겠다는 오진우의 태도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러지 말고 대표들에게 사과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오진우로서는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팀장은 어떤 일이었든지 대표들 마음에 안 드는 일에 끼어있으니 사과하는 것이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고 오진우에게 가르쳤다. 팀장과 이야기를 나눈 날 오진우는 장문의 문자와 전화로 대표 모두에게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한 사실에 대해 깊이 사죄하고 있다고 말을 전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일이 3개월 수습 계약서로 마무리되려는 것이었다. 오진우는 멈추지 않는 당황스러움이 버거웠다.
계약서에 사인을 한 후에 두 대표는 공공연하게 회사의 충성심을 시험했다. 오진우의 표정은 점점 굳어 갔다. 돌처럼 딱딱해지는 시간에는 깨진 조각들을 붙여도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오진우는 사회적인 신뢰를 완전히 훼손하기 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시급하게 해야 하는 일인 것을 직감했다. 익숙해진 일과 동료를 포기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수위를 높이는 무례가 남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오진우는 자신으로부터 고된 시간이 끝나고 있음을 예감했다. 퇴사 의사를 밝힌 오진우에게 권고 퇴사를 하라고 강요했던 김 대표는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가 있으니 좀 더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했고 공동대표로 회사를 운영하는 최 대표는 김 대표가 화가 나서 한 말이니 웃어 넘기 라면서 어깨를 쳤다. 오진우는 무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진우는 상황에 밀리는 대로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정해준 대로 시간을 사용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으로 들어가면 우울감을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진우는 3개월을 더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어제 책상을 정리했다.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일신상의 이유라는 사직서를 김 대표에게 내밀었다. 김 대표는 사직서를 낼 필요까지는 없었다면서 가볍게 웃었다. 사회생활할 때는 윗사람 말에 토를 다는 버릇은 좋지 않다며 마지막 날에도 오진우의 눈을 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그날의 회사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최 대표를 따르는 황 팀장은 클라이언트를 만난다며 회사를 먼저 나섰고 김 대표는 오전에 회사를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두 대표는 오진우에게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고 친한 동료 몇 명과 점심을 함께 먹고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식당 앞으로 나가는데 커피전문점 안에 최 대표와 황 팀장이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걸 오진우와 동료들이 함께 봤다. 오진우는 황 팀장 얼굴에서 황급히 눈을 돌렸다. 마침 돌린다는 게 최 대표 얼굴이었고, 최 대표는 웬일인지 웃으면서 손 인사를 했다. 오진우는 마음이 급속도로 불편해졌지만 꾸벅 인사했다. 조금 먼 거리에 있던 최 대표는 가까로 와서 오진우의 팔을 잡고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좋은 일이 있을 거라면서 덕담을 늘어놨다.
오진우는 파도가 치는 차창 밖을 보면서 최 대표의 인사를 생각하고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김 대표는 자신이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들을 쏟아 놓았다. 회사에 그렇게 불만이 많은 줄 몰랐다는 것부터 표정이나 옷차림까지 모두 다 거슬렸다고 했다. 표정이나 옷차림은 보이는 것이지만 오진우는 한 번도 김 대표에게 불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속이 이상했다. 오진우는 모든 것을 가위로 자른 듯이 자르고 싶었다. 그 시간이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최 대표를 생각하면서 회사에서의 시간이 더 선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오진우는 물속에 빠지는 상상을 한다. 얼마나 허우적 대다 뭍으로 오를 것인지 가라앉는다면 얼마나 가라앉아 있을 것인지를 상상한다. 이번 일은 누구도 같이 빠져 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라앉은 물속에서 올라가야 할 빛을 혼자 찾아야 했다. 누군가의 안부는 빛이 들지 않는 잠잠한 물속에 혼자 있을 때 뭍에서 괜찮냐며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전화기는 오진우 손에 있고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쩌면 오진우의 인생 중에 어느 부분이 영영 가라앉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라앉은 게 뭐였 건 간에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오진우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