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지와 상관없는 퇴사 요청

서울

by 오주황



아직 바람이 차가운 겨울이었다. 봄이 오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겨울이어서 손이 시리고 얼굴이 얼얼했다. 대표와의 약속은 어쩐지 껄끄러웠고 며칠 전에 회의시간의 일을 생각하면서 오진우가 대표실 문을 열었다. 메모할 다이어리와 펜을 책상에 얹고 자리에 앉았다. 짧은 침묵 후에 대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 왜 앉게 된 건지 알아?

너무 무겁지 않게 오진우가 대답했다.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와 네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어.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 실적으로 판단해서 거취 결정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 너는 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가게 되어 있어.

......


오진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침묵이 감도는 회의실에 더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오진우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청자 정도에 불과했고 마침 이 대화의 참여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아, 퇴사해야 하는 상황이구나.'를 비로소 생각할 때 었다. 대화가 시작되고 또 끝이 날 때까지 머릿속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런 작은 일이 대표에게는 정말로 큰일일 수 있는지, 아니면 대표가 권고 퇴사하라는 것이 작은 일인지 오진우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큰 일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오진우의 몸의 반응이었다. 열고 들어간 그 문을 반대로 열고 나온 후에는 아무도 없는 어디라도 들어가야 했다. 다시 생각을 해봐도 이런 일이 가능한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자리로 돌아가서 앉자마자 친한 동료가 옆구리를 치면서 물었다.


어디 다녀왔어?

대표님 만나고 오는 길이야. 오진우는 처음 경험해보는 일을 이해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멍하게 대답했다.

왜?

나도 정리가 안돼서. 내일 이야기해야 할게.


동료는 오늘 술 한 잔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좋지 않다고 걱정을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오진우는 어서 집에 도착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일찍 퇴근했다. 집 근처 벤치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오랫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가까운 사람 누구에게라도 오늘 일을 말할 수 없었다.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으며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앉아있는 머릿속에 반복되는 말은 대표가 말한 ' 너는 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가게 되어 있어. ' 였고 자신만만한 표정과 위압적인 공기가 방 안에까지 와 있었다. 가도 가도 같은 마음일지 몰랐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도 여전히 여유는 없었다. 이런 갑질에 언제까지 한 마디도 붙이지 못하는 사람이어야 하는지 몰랐다. 열심히만 하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믿음이 굳건했을 때는 알지 못했다.


강원도의 아침은 춥다. 바다로 나가볼까 해서 주섬주섬 양말을 찾아 신는다. 급하게 짐을 싸느라 가져오지 않은 것이 많다. 역시 사장님은 카운터에 없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북적한 곳이라더니 주중에는 길에도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에는 어제와는 다르게 차가 몇 대 있다. 밤에 강원도에 온 사람들인가 보다. 멀지 않은 바다를 향해서 오진우는 걷는다. 바닷소리는 우렁찰 것 같았지만 담담하고 조용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시선을 멀리 옮기면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회색 구름은 담담한 파도소리와 잘 어울린다. 오진우는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빈 바다의 해변을 걷는다. 이상한 퇴사 요청 이후로 정신이 사라지고 몸 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일을 해도 생경한 느낌이 들고 음식도 통 맛이 없었다. 그런데 빈 바다 한가운데서 듣는 파도소리 덕분에 대표실의 문을 열기 전 마음처럼 되돌아온 것 같다.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사장님이 추천해 준 식당 사진을 찾아본다. 사장님이 추천해준 식당 중에서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가진 식당이 거의 없다. 바닷가를 보면서 먹는 햄버거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오진우는 길 찾는 어플을 켠다.


빨리 회복되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모양이다. 어니언링은 시키지 말걸 후회가 밀려온다. 이 쪽 해변은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오는 모양이다. 주중에 서핑하는 사람이 몇몇 보인다. 초보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파도에 밀려 넘어진다. 주중에 서핑을 타러 여기에 왔으면 아직도 회사에 남아 있었을까. 오진우가 잠깐 생각한다. 두 대표가 공동 운영하는 회사에 대표 두 명이 각각 사람들을 데려와서 팀을 이루었다. 오진우는 김 대표의 인사권 아래 있는 사람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부실하지 않은 회사였다. 공동운영에도 큰 이견은 없었고 가족들이 왕래할 정도의 친분을 유지했다. 운영이 원활할 때에는 문제가 있어도 균열이 생기지 않았다. 문제는 수익이 나지 않는 프로젝트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출근날이나 휴무날 할 것 없이 단톡 방에서 PM인 팀장을 저격하기 시작했다. 최 대표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PM채용은 프로젝트의 적자로 인해서 두 대표의 사이를 극단적으로 멀어지게 했다.

전화기가 울린다. 팀장님이다. 손에 묻은 치즈와 전화기를 번갈아 보다가 다시 햄버거를 먹는다. 회사를 나온 지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회사 사람과 전화하면 다시 24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눈에 들어오던 바다와 먹던 햄버거가 미지근하게 변했다. 끊긴 전화기를 멀뚱이 보다가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선다. 오진우는 팀장에게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싶지가 않고 가라앉은 목소리는 더 싫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배우고 있는 중에 온 전화를 받아야 할지 몰라서 다 잡은 마음이 다시 흐트러진다. 오진우는 멀리 보이는 서퍼들의 표정이 궁금하다.




이전 01화빈 바다의 젊은 서퍼들